철학은 모든 학문의 시작이다.과학이 구체적인 현실에 접근한다면 철학은 탐구하는 영역이 추상적이라는 차이점이 있을 뿐. 의문과 질문 논리 논증 등을 위한 사유 능력을 키우는 독서는 대학에서의 공부에도 도움이 된다. 철학적인 생각으로 이끌어주는 책들을 살펴봤다.
취재 김지민 리포터 sally0602@naeil.com 도움말 채민신 교사(서울 용문고등학교)·이재은 작가 자료 서울대 철학과 홈페이지
인문학의 대중화와 더불어 사람들의 고민이나 삶의 문제를 살펴보는 철학책들이 많이 출간되면서 예전에는 ‘철학자들의 전유물’이라 여겼던 철학이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철학은 존재론·인식론·관계론·윤리론·가치론 등 다양한 영역으로 나뉜다.
대학의 철학 교과 과정을 보면 동·서양 철학사는 물론 형이상학·기호논리학·인식론·과학철학 등의 논리와 이론 철학, 윤리학·미학·사회철학 등의 윤리와 실천 철학 등 다양한 분과 학문으로 구성돼 있다. 아울러 분과 학문을 인식하기 위한 과학의 철학적 이해, 과학과 비판적 사고, 논리학, 기호학, 도덕적 추론 등 사유의 도구들에 대한 공부도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철학을 전공하고 <최소한의 인문학>을 쓴 이재은 작가는 “철학은 다양한 영역에서 제기되는 문제들과 인식론, 윤리론, 존재론 등을 통해 이에 대한 해결책을 탐구한다”고 말한다.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독서가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다.
철학을 공부하는 학생들과 교사들은 철학 독서 수준에 따라 철학 입문서를 시작으로 인식론·존재론·관계론 등 영역별로 확장해가는 것도 고등학교 단계에서의 좋은 독서법이라고 입을 모은다. 처음 선택이 막연하다면 소설의 형식을 빌려 쓴 철학 이야기 <소피의 세계>, 질문을 통해 철학적 사고력을 키우는 <나는 이 질문이 불편하다> 등 쉽게 읽히는 책을 통해 철학의 첫걸음을 떼어보는 것도 방법.
서울 용문고 채민신 교사는 “철학 관련 책을 읽을 때는 흐름과 쟁점 파악하는 것뿐 아니라 논리적으로 검증하며 읽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REPORTER’S PICK
나는 이 질문이 불편하다
지은이 안광복 펴낸곳 어크로스
‘나는 도대체 왜 살고 있나?’ ‘경쟁은 싫지만 승자는 되고 싶다면?’ ‘혼자의 시대, 굳이 친구가 필요할까?’ 등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22개의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읽다 보면 질문하고 답을 찾는 훈련을 거듭하면서 좀처럼 사용할 일 없었던 정신의 잔근육들을 사용할 수 있다. 비판적이고 논리적이면서도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기르는 데도 도움이 된다.
수시 합격생이 들려주는 나의 독서와 진로 이야기
철학, 사람과 세상을 탐색하는 도구 _ 김영진 서울대 철학과 2학년
“부모님 모두 인문학을 공부하시는 분들이라 중학생 무렵부터 부모님과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얘기를 나누는 일들이 익숙했어요. 철학과 진학을 결정한 시기는 고3 때였는데, 사람과 사람을 둘러싼 세계를 탐구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친숙하게 접해왔던 문학·역사·철학 중 철학을 제 탐구의 도구로 선택했어요. 철학의 매력은 추상성이죠. 추상적이지만 근본적인 내용을 엄밀한 방식으로 탐구하죠. 1년 동안 철학을 배운 소감은 ‘정말 재미있다’예요. 졸업 뒤 진로를 구체적으로 정하지는 않았지만 공부를 더 깊게 하고 싶어요. 철학에 관심을 가진 친구들은 자신의 고민에 대한 답이나 자신의 삶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도구가 아닌 ‘사유의 도구’로 철학을 생각해보길 바랍니다. 철학은 논리와 논증 등 날카로운 사유와 이성을 가지고 탐구하는 학문이니까요.”
이것이 인간인가
지은이 프리모 레비 옮긴이 이현경 펴낸곳 돌베개
반파시즘 저항운동에 참여하던 유대계 이탈리아인인 지은이가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폴란드 아우슈비츠 제3수용소에서 보낸 열 달간의 체험과 관찰을 기록한 책. 체험과 기억에 대한 책임감, 산문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언어의 유려함, 그리고 날카로운 통찰과 유머가 가득 차 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지은이 한나 아렌트 옮긴이 김선욱 펴낸곳 한길사
지은이는 예루살렘에서 열렸던 유대인 학살의 주요 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에 대한 보고를 통해 악의 평범성을 여러 각도에서 이야기한다. 그가 행한 악행에 대한 사실 관계 내용보다 그와 나치 세력의 인간성에 관한 전반적인 고찰이 담겨 있다.
사람과 사람을 둘러싼 세계의 문제를 철학을 통해 탐구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한 책들입니다. 윤리란 무엇인지, 선과 악은 무엇인지에 관한 생각의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출판사 추천 도서_ 창비
철학의 이단자들
지은이 스티븐 내들러 그린이 밴 내들러 옮긴이 이혁주
추천사
17세기의 서양 사상을 한눈에 살펴보고 싶다면
이 책은 스피노자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손꼽히는 스티븐 내들러와 그의 아들이자 만화가인 벤 내들러가 함께 만든 책입니다. 종교적, 혹은 철학적으로 ‘이단자’를 자처한 17세기 사상가들의 출현과 그에 따른 서양 근대 철학의 발전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담겨 있습니다.
갈릴레오와 데카르트부터 라이프니츠와 뉴턴에 이르기까지, 철학·종교·과학 등 분야를 넘나든 초기 근대 사상가들은 파문과 수감, 죽음을 불사하고 권위에 도전했지요. 이 책은 개별적인 지식의 나열이 아니라 그 사상의 배경과 사상가들의 관계를 풍성하게 스토리텔링해 입체적으로 이해하도록 돕는답니다. 스피노자를 비롯한 근대 유럽 철학 연구의 권위자로 손꼽히는 지은이 덕분에 아르노, 모어, 말브랑슈 등의 낯선 철학자들과 학계의 주목을 받지 못했던 엘리자베스 공주와 콘웨이 등과 같은 여성 철학자들까지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전공 분야를 살린 지은이의 탄탄하고 충실한 설명과 사회적·역사적 배경을 함께 짚어주는 친절한 서술 방식, 그리고 관념적인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풀어낸 그림 덕분에 철학을 한껏 가깝게 느끼게 합니다. 생생한 캐릭터들과 곳곳에 숨어 있는 재기발랄한 유머도 책 읽는 재미를 더해주지요. 철학이 난해하고 따분하다는 편견이 있다면 이 책으로 지식과 재미 두 마리 토끼를 한번에 잡아보시지요.
리포터가 읽어보니
철학책이 재미있네?
쉬운 철학책도 철학이란 단어의 무게를 이기기는 쉽지 않다. 용기를 내 시작해보지만 철학사에서 무너지기 일쑤. 이 책은 그동안의 무력감을 단번에 날려줬다. <철학의 이단자들>이란 제목과 ‘서양 근대 철학의 경이롭고 위험한 탄생’이란 부제가 우선 시선을 끈다. 이 책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선물은 갈릴레오와 뉴턴, 데카르트와 스피노자, 존 로크와 라이프니츠를 함께 살펴보며 17세기를 다시 보게 된 것. 그리고 그들의 ‘이단적’ 생각이 혁명적 변화를 이끌었음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아이들의 ‘이단적 생각’에 귀 기울이고 생각을 넓혀나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부모의 책임감도 함께 말이다. 사실 지금 후일담을 쓸 수 있는 이유는 이 책이 만화이기 때문이다. 탄력 있는 책의 질감과 보기 좋은 판형도 ‘철학책’의 부담을 확 덜어준다. 그림과 글양의 균형이 맞아 부담 없이 읽으면서도 내용은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책을 자세히 보니 아버지가 글을 쓰고 아들이 그림을 그렸다. 부자가 함께 철학을 얘기하며 책을 만들다니…. 상상만 해도 멋진 풍경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또 다른 ‘재미있는’ 철학책이 읽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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