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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2호

YUMMY EDU

생각보다 우아했던 모자 미식회




고백하건대 둘째인 아들이 중학생이 되면서 자녀 둘을 낳은 것을 후회한 적이 여러 번이었다. 사춘기 아들을 키워보니 첫째인 딸은 공짜로 키운 느낌이랄까? 중학생이 된 이후 한 번도 아침에 딸을 깨워본 적이 없다. 알아서 일어나 씻고 옷 입고, 어쩌다 바쁜 엄마를 위해 아침밥까지 차려 먹고 학교에 갔다. 봉사활동 시간을 못 채웠는지, 수행평가는 무엇인지 단 한 번도 신경 쓴 적이 없었다. 한데 아들은 정반대다. 이름을 열 번은 불러야 겨우 일어나고 봉사활동도 내가 찾아줘 가까스로 시간을 채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나도 모르게 아들에게만 잔소리를 쏟아붓는 불공평한 엄마가 됐다. 그래서일까, 아들은 자신이 학교 간 사이 누나와 엄마 단둘이서만 하는 맛집 나들이를 매우 불쾌해한다.


● ● 하여 개교기념일을 활용해 평일 한낮에 아들과 단둘이 맛집 나들이에 나섰다. 여의도에 사는 친구가 추천한 이탈리안 레스토랑 ‘올라(Ola)’가 그곳이다. 격식보다는 맛, 분위기보단 풍부한 양을 선호하는 우리 가족의 외식 패턴에서 살짝 벗어나는 장소지만 어떠랴? 나는 아들의 왕성한 식욕을 고려해 런치 코스 메뉴를 무려 3인분이나 주문했다. 메인 요리로 전복리소토와 홍합크림파스타, 로제파스타를 선택했다. 식전 빵으로 나온 금세 구운 마늘바게트는 입맛을 돋우기 충분했고 전복리소토는 부드러운 식감에 담백한 맛으로 속을 든든하게 채운다. 아들은 “마늘바게트가 맛있다”며 세 번이나 리필을 요청했다. 동네 파스타 집과는 차원이 다르다며 엄지 척을 반복한다.


● ● ● 밥을 먹으며 ‘이제 중3이니 진로 얘길 해볼까?’ ‘아니지, 무질서한 생활태도를 고치겠다는 다짐을 받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했지만, 이 두 주제는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저 평소 맛보지 못한 맛있는 음식을 대하며 감탄사를 연발했고 음식의 재료와 조리법, 맛에 대한 평가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리조또’가 아니라 ‘리소토’라며 맞춤법을 지적하는 엄마의 얘기에 귀 기울이는 아들의 모습이 낯설 정도였다. 마냥 즐겁고 아무 생각 없었을 것 같던 아들의 일상에도 이렇듯 ‘우아한 환기’가 필요했나 보다. 자주는 못 오더라도 “다음에 꼭 다시 오자”는 약속을 하며 식당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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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정민 리포터 sjm@naeil.com
  • YUMMY EDU (2019년 04월 10일 9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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