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대학 동창들과의 송년 모임. 입시철이니 자연스럽게 대학 입시 얘기가 화제에 올랐다. 이번에 딸아이가 입시를 치른 한 친구는 수시에서 6장의 원서 모두 ‘광탈(빛의 속도로 탈락했다는 뜻)’했다는 우울한 소식을 전했다. 예비 번호도 한 장 받지 못했다는 그 친구에게 우리는 기다려보라고, 원래 추가 합격하면 더 기쁜 거라고, 또 정시도 남아 있지 않느냐며 위로했다. 아이들을 다 대학에 보내 입시와는 상관없을 것 같던 친구도 그동안 남모르게 마음고생한 사연을 털어놓아 우리를 놀라게 했다.재작년에 대학에 수시로 합격한 아들이 1년 동안 대학생활을 신나게 해 잘 적응하는 줄 알았더니 겨울방학에 들어서자 다시 한 번 수능을 도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3년 동안 의대 진학을 목표로 살아왔는데 그 꿈을 포기하지 못하겠다고, 한 번 더 해보려고 하니 엄마가 좀 도와달라고 했다고 한다. 친구는 첫아이에 이어 연년생 둘째의 입시를 치르고 한숨 돌린 지 얼마 안 된 마당에 3년째 입시 뒷바라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지더란다. 그렇게 삼수 같은 재수를 시작한 친구 아들의 1년은 파란만장했다. 9월 모평에서는 평소 한두 개 틀리던 수학에서 4등급을 받을 정도로 깊은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다. 결국 수능에서는 의대를 지원할 수 있는 성적을 거머쥐었다.
아주 가까운 지인의 아들 역시 재수를 했다. 수능 당일, 극도의 긴장감으로 1교시 국어 시험에서 지문을 아무리 읽어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단다. 고3 때보다 더 좋지 않은 성적을 받았다. 성적에 맞춰 대학에 진학했고 1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갔다. 21개월의 군복무를 마치고 수능까지 남은 기간은 한 달 반 남짓.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숨기고 수능을 준비했다. 지금까지 본 수능 중에 가장 좋은 성적을 받았고 원하는 학과에 진학해 대학생활을 보내고 있다.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이번 수능이 인생의 끝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다. 재수가 성공을 보장해주지 않기 때문에 재수를 권할 생각도 없다. 원하는 대학이 아니더라도 만족한다면 전혀 문제가 아니다. 대학 가서 잘하면 된다. 대학의 간판과 상관없이 실력만으로 성공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만족하지 못한다면 다시 도전해도 된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결국 이 또한 선택이다.
얼마 전 정시 원서 접수가 끝났다. 큰아이를 대학에 보낸 지 5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정시 때면 그때 기억이 생생하다. 그래서인지 수시 합격한 친구들보다 훨씬 오래 마음고생을 할 정시생들을 보면 마음이 짠하다. 원서를 쓰는 동안 많은 학생이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성적이 안 나와서 의기소침한 아이를 보는 부모의 마음도 아프긴 마찬가지다. 주사위는 던져졌고 결과를 겸허히 기다려보자. 고민은 그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지금은 수험생과 부모 모두 지친 마음을 추스르고 잠시라도 안식을 취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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