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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4호

WEEKLY CLOSING

무명의 그루터기들은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지난해 8월 문재인 대통령은 교육부 핵심 정책 업무 보고에서 주문했다.
“입시 제도는 단순하고 공정하다고 국민들이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사교육비를 획기적으로 절감하는 대책을 만들어달라.” “과도한 입시 경쟁과 사교육비, 심화되는 교육 격차는 문재인 정부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교육이 희망사다리가 되지 못하고 불공정하다면, 그 사회의 미래는 암담하다는 사실을 명심해달라

지난 17일 교육부는 ‘2022학년 대학 입학 제도 개편 방안 및 고교 교육 혁신 방향’을 발표했다. 그런데 의문이 든다. 과연 교육부는 앞서 대통령이 주문한 것들에 대해 제대로 답변을 내놓은 것일까? 이번 발표안은 단순하고 공정한가? 사교육비를 획기적으로 절감하는 안인가? 과도한 입시 경쟁을 완화하는 안인가? 교육이 희망사다리가 된다는 희망을 주고 있나?
대통령이 요구한 내용 중 제대로, 또 자신 있게 대답할 만한 내용은 전혀 보이질 않는다. 그래서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교육을 실제로 담당하는 최전선의 학교 교사들을 좌절하게 하고, 사교육을 춤추게 만든 이런 안이 왜 만들어졌을까? 고교 교육 혁신 방안을 차기 정부로 넘길 거라면 굳이 왜 발표한 것일까? 이번 발표안이 정치, 경제, 대북 관계 같은 분야들과는 달리 교육에서만큼은 손을 놓겠다는 현 정부의 선언으로 들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겉으로는 교육부의 무기력함 때문인 것처럼 보이지만, 분명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작동한 ‘검은 손’들이 있었으리라는 추측이 강하게 드는 까닭은 왜일까?

사실 이번 발표안 이전에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다양한 개혁안들이 제기된 바 있다. 지난해 4월 더불어민주당 초·재선 의원 모임인 ‘더좋은미래’의 정책연구소 ‘더미래연구소’는 ‘2017년 이후의 대한민국 대선 핵심 어젠다’ 보고서에서 대학 입시 개혁과 관련, 정시는 수능 중심 전형으로, 수시는 학생부 위주 전형으로 단순화하고, 수시 선발 인원 중 50% 이상을 학생부 내신 전형(학생부 교과 전형)으로 선발할 것을 의무화하는 정책을 제안했다. 지난해 8월 더불어민주당이 주최한 ‘공정한 입시 제도 마련을 위한 교육 개혁’ 토론회에서는 교육부가 발표한 수능 개편안을 물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는데, 결국 그 주장대로 정책이 결정됐다. 결과적으로 2020, 2021, 2022학년 수능이 모두 달라지게 만들었다. 올해 3월에는 더미래연구소가 ‘학생과 학부모 등 수요자 중심의 입시 제도 개편안’ 보고서를 통해 학생부 종합 전형을 폐지하고 모든 대학이 수능, 내신, 수능+내신으로 각각 동일한 비율의 선발을 시행하자고 제안했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 속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사교육 출신 교육 전문가들의 의견이 과도하게 개입됐다는 데 있다. 지난해 4월 보고서 143쪽에서 언급된 대학 입시 개선 방안은 더미래연구소 공동 주최로 실시된 두 차례의 토론회와 사교육 출신인 한 연구소장과의 집중 토론 등을 통해 마련됐다. 올해 3월 더미래연구소 보고서도 이와 비슷한 양상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런 현상은 이후 대입 개편안 마련 과정 등에서도 두드러졌다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처방받아야 한다. 그런데 교육은 왜 사교육 출신 인사들에게 검증받아야 할까? 그들이 그 자리에서 활동하도록 멍석을 깔아준 사람은 누구일까? 교육부 안이나 교사들의 의견은 왜 ‘패싱’되는 것일까? 아무래도 교사나 교육부 관계자들을 교육 전문가로 취급하지 않는 듯하다. 교육 전문가로 인정받으려면, 먼저 사교육을 제대로 경험한 후 연구소를 만들어야 하는 것인가? 요즘 들어 이런 혼잣말이 늘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세상이 ‘왜?’라는 의문점들로 가득 차 보인다. 현장 교사들은 울분을 토하는데, 사교육 업계는 두 팔 벌려 환영하는 아이러니한 세태를 마주한다

그루터기는 나무를 벤 후에 남은 나무둥치를 가리킨다. 나무가 베임을 당하여 모든 것이 끝난 듯 보이나 그 그루터기는 남을 것이고, 시간이 걸릴지언정 다시 자랄 것이다. 교육 격차를 줄이기 위해 학교 교육의 최전선에서 묵묵히 맞춤형 교육을 하고, 사교육의 도움 없이도 배움의 경험을 쌓아가도록 애쓰는 무명의 그루터기들은 여기서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아울러 교육도 정치임을 깨닫는다. 사회와 학부모들의 따가운 시선 앞에 부끄러움을 안고 신뢰를 얻기 위한 배전의 노력을 경주할 것이다. 교육을 교육답게 하는 그날을 고대하며, 고교 교육과 대학 교육이 연계된 입시 제도를 새롭게 디자인해나갈 것이다



주석훈 교장
서울 미림여자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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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EEKLY CLOSING (2018년 09월 05일 8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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