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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6호

미세먼지 많은 날 야외수업에 불안한 학부모들

민원 요청해, 말아?

연일 미세먼지 나쁨 발령으로 학령기 자녀를 둔 학부모들의 마음이 편하지 않다.
잠깐만 외출하고 돌아와도 눈과 목이 따가운데 운동장 체육 수업이나 현장 체험 학습, 봉사전일제를 강행하는 일부 학교의 운영 방침에 뿔난 엄마들이 많다.
미세먼지에 둔감한 학교와 정부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의 몫일 터!
미세먼지 많은 날 야외수업 하는 학교, 방관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취재 심정민 리포터 sjm@naeil.com 자료 국립환경원·교육부·보건복지부·서울환경운동연합·에어코리아·환경부




“담당자 찾아 삼만 리, 민원 전화하기 너무 지쳐요”
우리 집에선 고1 아들의 학교 운동장이 훤히 보여요. 그날따라 미세먼지로 앞산이 안 보일 지경인데 체육 수업을 하는 겁니다. 놀라서 학교에 전화를 했죠.
행정실에선 “교육청에서 실외 활동 자제 공문이 오면 체육 수업을 금지하는데 공문이 안 왔다”고 하더라고요. 바로 경기도교육청에 전화하니 제 얘기를 다 듣고선 성남교육지원청에 문의하라고 합니다. 화를 꾹 참고 성남교육지원청에 또 전화를 했죠. 그런데 또 제 얘길 다 듣고 평생교육건강과로 문의하라네요.
대체 언제까지 같은 얘길 반복해야 할까요? “교육청에선 일선 학교에 실외 활동을 자제하라는 공문을 보냈지만, 결정은 학교 교장 재량이다”는 답변만 돌아왔답니다.
_지은숙(가명, 44·경기 분당구 율동)


“먼지비 내리는 날 놀이공원이라니요!”
중간고사가 코앞인데, 중2 딸 반 애들 중 상당수가 감기에 걸렸어요. 2주 전 놀이동산으로 다녀온 체험 학습이 화근이었답니다. 체험 학습 2~3일 전부터 뉴스에서 먼지비가 내린다고 예보했는데, 외부 활동을 강행한 학교가 이해되지 않더라고요. 체험 학습 이틀 전에 교감 선생님에게 전화했더니 “이미 업체에 체험 활동비가 지급돼 취소하면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 보슬비 수준이니 옷 따뜻하게 입고 우비 준비하면 문제 없을 것이다”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체험 학습 당일 비는 세차게 내렸고 바람도 강해 딸은 겉옷은 물론 운동화까지 흠뻑 젖어 집에 왔더라고요. 위약금에 묶인 아이들의 건강은 누가 지키나요?
_송은주(44·서울 강동구 명일동)



신문고 도배한 미세먼지 민원, 대책은?
“공공기관이나 학교에 공기청정기를 설치해주세요.”
지난 3월 15일 문을 연 국민참여예산 홈페이지(www.mybudget.go.kr)에 접수된 국민들의 목소리다. 국민참여예산제도는 지난달부터 홈페이지나 이메일, 우편 등을 통해 공식 사업 제안을 받고 있다. 그간 올라온 여러 제안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건 역시 ‘미세먼지’다. 재난 수준에 이른 미세먼지 농도 탓에 제안 건수 31건으로 노인(21건)과 출산ㆍ육아(17건), 중교통(11건) 등 복지나 공공 인프라 관련 사업보다 훨씬 많았다. 실제로 학부모들도 학교와 교육청, 교육부, 청와대 신문고, 국민청원 등에 미세먼지 관련 민원을 제기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아이들의 공간인 학교에 공기청정기를 설치해주세요”라는 제안이 올라왔는데 당일에만 1만5천여 명이 참여했을 정도다.
전국 초·중·고등학교 현장은 물론 시ㆍ도교육청에도 미세먼지 관련 민원이 넘친다. 대구시교육청의 한 관계자는 “3월 신학기가 시작되고부터 미세먼지와 관련해 단 하루도 학부모 민원이 없었던 적이 없다”고 말한다. “미세먼지에다 황사까지 겹친다는 예보가 있던 날 840여 개 초·중·고등학교 담당자에게 야외수업 자제를 요청했지만, 그나마도 강제로 규제할 수 있는 게 아니어서 지금으로선 어쩔 수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미세먼지 대응 제각각, 혼란스러워
대부분의 시ㆍ도교육청은 교육부 지침에 따라 미세먼지 농도 ‘매우 나쁨’ 이상인 ‘주의보’ 가 내리면 각급 학교 야외수업을 금지한다. 그 아래 ‘나쁨’ 단계(81〜150㎍/㎥)에서는 ‘자제’하라고만 통보하는 수준.
반면 서울시교육청은 최근 정부 권고보다 엄격한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에 따라 미세먼지 농도가 50㎍ 이상(초미세먼지 25㎍ 이상)만 돼도 야외수업을 자제하고 마스크를 착용하도록 지도하고 있다.
하지만 일선 학교는 정부의 이 같은 지침에도 미세먼지에 대응하는 자세가 제각각이다.
경기 일산의 ㅎ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ㅈ학생은 “며칠 전, 미세먼지 수치가 매우 나쁨에 가까웠고 며칠째 목이 아파 수업 중에 마스크를 착용했다가 담당 교사에게 버릇 없어 보인다며 야단을 맞았다”고 전한다. 이와 달리 서울 노원구의 ㅅ중학교는 미세먼지 나쁨 단계에서 전교생에게 마스크를 제공해 수업 중에도 착용하도록 권고했다. 또 경기 의정부시의 ㅂ중학교는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 단계인 날에 식물원으로 사생대회를 나갔지만, 서울 성북구의 ㅇ중학교는 같은 날 예정했던 봉사전일제를 취소했다.



학부모들 조직적 민원 요청 늘어
사정이 이렇다 보니 미세먼지를 바라보는 학부모들의 불안은 더욱 커지고 있다. 학교에 항의 전화를 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학부모가 나서 미세먼지 측정기나 공기청정기를 기증하자는 움직임까지 나오고 있다. 또 학부모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미세먼지 관련 민원 요청 매뉴얼까지 나도는 상황이다. ‘최소 10명 이상의 학부모들이 자녀 학교 관계자에게 일정한 시간을 두고 반복적으로 항의를 한다’ ‘교육청에도 이와 비슷한 방법으로 민원을 요청한다’ ‘교육청 홈페이지에 방문해 ‘교육감에게 바란다’ 는 게시판에 미세먼지 관련 민원을 올린다’ ‘청와대 신문고나 국민청원에 미세먼지 관련 구체적 요구 사항을 적어 여론을 조성한다’는 식의 내용이 그것이다.
김미영(가명, 51·서울 송파구 잠실동)씨는 “학부모들이 이렇게까지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학교에 전화하면 교육청 소관이라고 말하고, 교육청에 전화하면 학교장 재량이라며 서로 책임을 전가한다”며 개인이 민원을 요청해 원하는 답을 얻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김씨는 “일각에선 학교의 학생 교육권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학부모들의 지나친 개입을 볼썽사납게 보는 시각이 있지만, 내 아이를 넘어 대한민국 청소년의 건강이 달린 문제인 만큼 되도록 많은 학부들의 관심과 민원 요청이 필요하다”고강조한다.
그렇다면 학부모들의 이런 행동에 관한 교육 당국의 생각은 어떨까? 교육계의 한 관계자는 “교육부나 교육청, 자치단체 모두가 민원에 매우 민감한 게 사실이다. 현실성 있는 제안이나 요청에 관해서는 될 수 있는 한 정책에 반영하고자 노력한다”고 전했다. 최근 미세먼지 관련 학부모들의 민원이 업무에 지장을 줄 만큼 쇄도 중인 건 사실이지만 이런 과정이 다양한 해결 방안 도출에 도움이 된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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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정민 리포터 sjm@naeil.com
  • EDU LIFE (2018년 04월 18일 85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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