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시대까지 비교적 자유롭던 여성의 삶은 조선이 들어서자 남존여비, 칠거지악, 여필종부 등 가부장 중심 가족관계를 중시하는 성리학적 이념 체계 안에서 점차 위축됐다. 여성들의 사회활동은 극히 제한적이었으며 남편과 부모를 섬기고 후세를 낳아 기르는 등의 역할만이 주어질 뿐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물 없이 고구마 100개 먹은 듯한 상황’에서도 빼어난 재능으로 세상에 이름을 남긴 이들이 있었다. 조선 4대 여류시인이라 불리는 허난설헌, 황진이, 신사임당, 이매창이 그 주인공이다. 이 중 허난설헌의 존재는 단연 눈에 띈다. 율곡 이이의 어머니로 더 초점이 맞춰진 신사임당이나 그나마 사회활동이 가능했던 기생 출신의 황진이와 이매창과는 달리 사대부가에서 오로지 자신이 쓴 시로 조선을 넘어 중국과 일본에서까지 이름을 날렸기 때문이다. 살아생전 불행의 아이콘이었으나 후대엔 조선 최초의 한류 스타로 자리매김한 허난설헌을 만나보자.
글 김한나 ybbnni@naeil.com
사진 위키백과·강릉관광개발공사 누리집
참고 <인물한국사> <허난설헌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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