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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8호

핫 토픽 ‘쫌’ 아는 10대 39 | SPC 참사와 중대재해처벌법 _ 있으나마나한 중대재해처벌법?

인권 위에 이윤, 더 이상은 못 참아!

과거 프랑스에서 빵은 불평등을 상징했다. 귀족들은 고운 밀가루와 버터를 듬뿍 넣어 만든 ‘고급진’ 빵인 ‘브리오슈’를, 일반 평민들은 시커멓고 거친 잡곡빵을 먹었다.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 혁명은 ‘빵의 평등’을 가져왔다. 신분에 관계없이 질 좋은 빵을 먹을 권리를 부여받았다. 평등의 빵 ‘바게트’는 그렇게 탄생했다. 지난 10월 15일, SPC 평택 제빵공장에서 20대 노동자가 소스 배합기에 끼어 목숨을 잃었다. 그로부터 8일 후, SPC 계열 샤니 제빵공장에서 40대 근로자가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다. 양 참사 모두 사측의 ‘이윤 지상주의’가 빚어낸 ‘인재’였다. SPC의 대표 브랜드는 ‘파리바게뜨’다. 그러나 그곳에 인권과 평등은 없었다. 노동자들의 마지막 보루인 중대재해처벌법마저 비웃는(?) 이번 참사의 면면을 담아봤다.

취재 김한나 리포터 ybbnni@naeil.com
사진 연합













국내 제빵 시장 패왕(霸王)의 횡포

‘제빵계의 삼성’으로 불리는 SPC그룹의 국내 빵 점유율은 무려 83%라고 해. (본인들은 이 수치가 틀렸다며 40%밖에 안 된다고 겸손(?)한 발언을 하고 있지만)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편의점과 패스트푸드점 등에 들어가는 빵 중에 SPC 소속이 아닌 걸 찾기가 어려울 정도라니 말 다했지. ‘와우~ 그럼 사원 복지도 빵빵하겠군!’ 하고 생각했다면 당신은, 왕!초!보!

지난달 15일 새벽 6시 20분경, SPC 계열사인 SPL 평택 제빵공장에서 근무하던 23세 여성 A씨의 앞치마가 샌드위치 소스 배합기에 빨려 들어가는 사고가 발생했어. 성인 남성도 들기 힘든 10~20㎏의 소스통을 혼자 붓다가 무게 중심을 잃은 거야. A씨는 생전에 격무를 호소하며 인력 충원을 요청했다고 해. 저녁 8시부터 아침 8시까지 1년 넘게 12시간 동안 야간 근무를 하며 온전히 체력으로 버텨야 하는 중노동을 혼자 감당하기엔 너무 벅찼을 테니까.

하지만 회사는 이 같은 호소를 외면했어. 아니 ‘일관되게 외면했다’가 맞는 표현이겠다. 2017년 노동조합(노조) 설립 후 투쟁 중인 SPC 소속 제빵기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연차와 휴식, 식사 시간 미보장에 가족상을 당하거나 임신을 해도, 몸에 화상을 입어도 병원에 가지 못하고 빵을 만들어야 했다고 해. 2017년부터 올해까지 SPC그룹에서 발생한 재해자는 총 581명으로 2017년 4명에서 2018년 76명, 2019년 114명, 2020년 125명, 2021년 147명으로 계속 증가했다지. 그나마도 노조가 꾸려져 이런 사실을 알렸으니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재해 사고는 모두 은폐되었을 거래. 하지만 사측은 부당한 처우를 개선해달라며 단식투쟁까지 불사한 노동자들의 요구를 철저하게 묵살했어. (지금까지도!) 그러면서 (노동자들의 절규는 외면한 채) 경영권 승계를 목적으로 계열사 삼립에 414억 원의 이익을 몰아주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질렀다지 뭐니. (이건 수사 진행 중.)

다시 15일의 참사로 돌아와서 설명하자면 A씨가 끼인 기계는 덮개를 열면 작동이 멈추는 인터록(자동안전제어장치)이 설치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어. (인터록의 가격은 개당 30만 원에 불과하다고 해.) 게다가 이 공장에선 사건이 터지기 8일 전에도 노동자가 컨베이어에 손을 끼이는 사고가 일어났었어. 20분이나 걸려 피해자의 손을 빼냈는데 사측은 ‘훈계’ 외에 그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지. 정식 직원이 아닌 3개월짜리 파견직이니 알아서 하라며 말야.

A씨의 시신을 수습한 건 함께 일하던 노동자들이야. 당시 40명이 넘는 사람들이 공장에서 근무 중이었거든. 한데 SPC그룹은 다음날에도 사고 장소만 흰 천으로 가린 채 옆에서 작업을 이어나가게 했어. 사고를 목격한 노동자들이 트라우마를 호소했음에도 바로 일에 투입시킨 거지. 후에 이를 알게 된 고용노동부가 작업 중지 명령을 내리자 17일엔 평택 공장 노동자들을 대구 공장에 보내 일을 시켰고. 그러곤 파리바게뜨가 영국 런던에 1호점을 냈다는 홍보 기사를 주요 일간지에 대대적으로 내보내는 데 열을 올렸어. 진심 어린 반성보다 기업 이익만 생각하는 태도라니! 화룡점정은 A씨의 장례식에 자사 빵 2박스를 보낸 거야. 직원 경조사 지원품 매뉴얼에 따른 조치였다나? 암요~ 그러시겠죠~


뒤늦은 사과와 거세진 불매운동

SPC그룹은 참사 이틀 뒤에야 “재발 방지를 위해 모든 힘을 기울여 다시는 이런 가슴 아픈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공문을 내놨어. 그럼에도 논란이 진화되지 않고 불매운동 바람이 거세질 기미를 보이자 21일엔 허영인 회장이 직접 등판해서 부랴부랴 사과하며 고개를 숙였지. 사고 방지를 위해 향후 3년간 1천억 원을 투자하겠다는 발표도 했고.

한데 웬걸, 이틀 후인 23일엔 SPC의 또 다른 계열사인 샤니 제빵 공장에서 40대 근로자의 손가락이 기계에 껴 절단되는 사고가 발생한 거야. 진정성 없는 사과와 연이은 안전사고에 분노한 소비자들은 ‘피 묻은 빵을 거부한다’며 SPC와의 결별을 선언했어.

SNS에 SPC 불매 해시태그가 달린 게시물을 올리고 브랜드 목록 공유는 물론 심지어 바코드를 찍으면 SPC 제품인지 확인할 수 있는 웹사이트까지 자발적으로 정성스레 제작해 배포했지. 대형마트와 유통업체들도 (호빵의 계절인 겨울을 앞두고 시장 점유율 90% 이상인) 삼립호빵을 포함한 SPC 제품과 ‘손절’하는 모양새야. 개인을 넘어 기업들도 불매운동에 동참하고 있고. 현대자동차를 포함한 몇몇 기업은 기존 사원 간식으로 제공하던 SPC 계열 제품을 타사 먹을거리로 전환했다고 해.

사람보다 돈이 먼저인 기업주들에게 본때를 보여줘야지 법은 뒀다 어따 쓰냐고? 안 그래도 올해 초부터 산재 사망사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어. 하지만 이번 사태에는 적용이 어렵다네? 어허~ 흥분하지 말고, 우리 중대재해처벌법이 뭔지 먼저 살펴보자.






중대재해처벌법 톺아보기

2022년 1월 27일, 꽤나 떠들썩하게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어. 당시 법률사무소마다 기업들의 문의가 쇄도했다지. (대부분 ‘어떻게 하면 사업주가 처벌을 피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는 건 안 비밀.) 중대재해처벌법이란 ‘근로자 50인 이상의 기업에서 중대한 인명 피해를 주는 산업 재해가 발생했을 경우 사업주에 대한 형사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한 법안’이야. 법에 따르면 안전사고로 노동자가 사망할 경우 사업주 또는 경영 책임자에게 1년 이상의 징역이나 10억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어. 법인에는 50억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되어 있지. 노동자가 다치거나 질병에 걸린 경우에는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되고.

기업들은 법안에 줄곧 반발해왔어. 사업자에 대한 처벌 수위를 대폭 높인 데 비해 처벌 조항이 모호해 자의적인 해석이나 적용으로 기업 경영이 어려워질 수 있다나? 한데 말이지~ 일각에선 ‘있으나 마나한 중대재해처벌법’이라는 자조 섞인 비판이 나오고 있어. 실상 이번 참사의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모두가 확신하)는 SPC그룹 회장은 처벌 대상이 되지 않을 거라는 게 중론이거든. 사고가 난 공장은 SPC 계열이 맞긴 하지만 SPL이라는 독립된 기업이고 대표도 따로 임명해놨기 때문이지.

올해 1월 29일 경기도 양주 채석장 붕괴 사고로 노동자 3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해 ‘중대산업재해 1호 기업’이 된 삼표산업도 대표이사 등은 검찰에 송치돼 조사를 받고 있지만 정작 실재 그룹을 이끄는 최대 주주인 정도원 회장은 입건조차 되지 않았어. 아니, 실질적인 대표가 처벌받아야지 이게 뭐 하는 ‘시츄에이션’이냐고? 그러게 말야~


처벌이 능사가 아니다?

지난 10월 26일, 이번엔 경북 봉화에서 아연 채굴광산이 매몰돼 작업자 2명이 고립돼 갇히는 사고가 발생했어. 직원 수 52명으로 중대재해처벌법 대상인 해당 광산업체는 사고 발생 후 소방 당국에 바로 신고하지 않고 자체 구조를 하려다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비난을 받고 있지.

이와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20대 제빵 노동자, 건설 현장 50대 노동자, 외국인 노동자 등 땀 흘려 일하는 분들의 연이은 안타까운 소식에 마음 가눌 길이 없다”고 전하며 “사고 발생 후 책임을 묻는 처벌 위주의 정책만으로는 소중한 생명의 희생을 막을 수 없다. 사고를 예방하는 것이 산업 재해 대책의 핵심”이라고 강조했어. 그러면서 “누구나 안심하며 일할 수 있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지.

최근 발생한 사고들은 안전설비 점검 등의 예방 활동으로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인재였어. 중대재해처벌법의 핵심은 ‘의무를 다하면 처벌하지 않는다’는 거야. 청소년은 미래의 노동자야. 때문에 산업 재해가 끊이지 않는, 인간이 소모품 취급되는 세상은 종식돼야만 해. 그러려면 위법 시엔 예외 없이 엄격하게 처벌하는, 강력한 법 집행이 필요하지 않을까?

SPC 불매운동을 놓고 누군가는 말해. “기업이 잘못했는데 왜 6천여 개의 가맹점이 고통받아야 하나!” 소비자들은 누구나 이윤 활동을 하더라도 품위를 갖춘, ‘존경받는 기업’을 원해. 불매운동은 그런 염원을 담은 소비주권의 행사가 아닐까. SPC는 더 이상 가맹점의 뒤에 숨지 않길 바라. 그리고 이번 사태를 계기로 더 크고 아름다운 기업으로 거듭나길. 우린 누군가의 눈물과 피로 구운 빵을 먹고 싶진 않으니 말야.







어느 때보다 많은 뉴스가 쏟아지는 요즘입니다. 문제는 제대로 된 정보를 걸러내고 해석하기 어렵다는 거죠. 과학 기술의 발전, 가치관의 변화,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청소년의 실생활과 밀접하거나 알아두면 도움이 될 이슈를 콕 집어 알기 쉽게 풀어드리겠습니다._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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