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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3호

핫 토픽 ‘쫌’ 아는 10대 32 | 미국 낙태권 폐지

자기 결정권 VS 생명권 미국발 낙태권 폐지, 지구촌을 흔들다

지난 6월 24일 미국 연방 대법원(미 대법원)은 여성의 낙태권을 보장한 대법원 판결인 ‘로 대(對) 웨이드’를 49년 만에 폐지했다. 이에 따라 미시시피, 텍사스, 아칸소 등 절반 이상의 주가 낙태를 금지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미 대법원이 극단적이고 위험한 길을 택했다고 비난했다. 세계 각국 정부도 여성들의 삶을 70년대로 후퇴시켰다며 유감을 표했다. 우리나라는 3년 전 헌법재판소(헌재)가 낙태죄에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린 뒤 낙태죄 처벌 조항이 효력을 잃었지만 여전히 명확한 기준이 없는 ‘입법 공백’ 상태다. 미국 로 대 웨이드부터 한국 낙태법의 현주소까지,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낙태권에 대해 담아봤다.

취재 김한나 리포터 ybbnni@naeil.com
사진 연합
















미국이 뒤집어졌어. 미 대법원이 49년 만에 여성의 낙태권을 보장한 ‘로 대 웨이드’ 판례를 폐기했거든. 이제 각 주는 독자적으로 낙태권 존폐 여부를 결정할 수 있게 됐어. 보수 성향이 강한 텍사스나 미주리, 루이지애나 등은 환영의 뜻을 밝혔고 진보 성향의 뉴욕과 워싱턴 등은 즉각 반발했지.

이번 판결에 프랑스와 영국, 뉴질랜드, 캐나다 총리는 물론 미국의 내로라하는 스타들도 ‘이게 미?’하며 탄식을 금치 못하고 있어. 실례로 그래미 어워드에서 BTS의 뷔와 귓속말 퍼포먼스로 전 세계 아미의 환호성을 자아냈던 팝 스타 올리비아 로드리고는 영국 음악 축제 글래스턴베리 무대에 올라 판결의 주역인 미국 보수 대법관들의 이름을 한 명씩 호명한 뒤 “증오하는 당신들에게 이 노래를 바친다”라며 수위 높은 욕이 담긴 곡을 열창했어. 그러곤 “낙태권 폐지로 많은 여성과 소녀들이 죽게 될 것”이라며 분노했지.

뿐만 아냐. 세계적인 작가 스티븐 킹은 “19세기로 돌아간 미 대법원”이라고 꼬집었고, 유명 밴드 그린데이의 리더 암스트롱은 시민권 포기를 선언했지. 국제기구도 연달아 성명을 발표했어. UNFPA(유엔인구기금)는 낙태의 제한·금지는 임신부의 건강과 생명을 심각하게 위협할 거라 경고했고 WHO(세계보건기구)도 수많은 여성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게 한 결정이라며 강한 비판을 이어갔지.

낙태권 폐지에 대한 항의와 반발은 당사자인 미국을 넘어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중이야. 실상 인류는 낙태권을 둘러싸고 오랫동안 논쟁을 벌여왔고 여전히 답을 내지 못하고 있어. ‘낳지 않을 권리’와 ‘생명권 존중’은 옳고 그름이라는 간단한 논리로는 해결 불가능한 복잡한 사안이거든. 답을 내리기 위한 첫걸음은 문제를 바로 보는 걸 거야. 낙태의 역사부터 반세기 만에 전 세계를 들끓게 한 낙태권 논란을 부른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뭔지 먼저 살펴보자고~


낙태의 역사와 ‘로 대 웨이드’ 판결

기록에 따르면 그리스로마 시대에도 낙태가 성행했어. 이후 중세를 거치면서 철학적·신학적인 논쟁이 일었지만 여전히 금지되진 않았지. 18세기 이전까지도 계속 묵인되던 낙태는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여러 나라에서 법으로 금지되기 시작했어.

낙태금지법을 최초로 도입한 나라는 기계 공업, 즉 공장이 가장 먼저 발달했던 영국이야. 1803년에 법을 제정했거든. 당시 영국 자본가들은 좁은 기계 구석구석까지 들어가 일을 할 수 있는 어린 노동자를 선호했어. 아이들은 4살 때부터 말도 안 되는 임금과 안전이라곤 ‘1’도 보장되지 않는 환경에서 하루 15시간씩 일해야 했지. 노동자 평균 수명 15세, 더 많은 아이들이 계속해서 태어나야 일손을 메꿀 수 있었겠지. (그러니 생명을 귀히 여겨 법이 만들어졌다고 오해하진 말자~) 뒤이어 프랑스가 1810년에 낙태한 여성은 물론 시술자까지 5~10년의 형을 부과하는 법을 제정했고 미국도 1868년까지 거의 모든 주가 낙태금지법을 시행했어.

시간이 흘러 1969년, 미국 텍사스주에서 홀로 두 아이를 키우고 있던 22세 여성 맥코비가 성폭력으로 임신을 하게 된 사건이 발생했어. 하루 벌어 하루, 간신히 생계를 유지할 정도로 가난했던 멕코비는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없었지. 당시엔 4개 주만이 합법적으로 낙태를 허용했어. 수술을 받으려면 그곳까지 원정을 가야했지만 아이들을 맡길 곳도 경제적 여유도 없었던 멕코비는 낙태금지에 관한 텍사스주 법이 모호할 뿐만 아니라 헌법에 보장된 개인 사생활의 권리가 침해당했다며 소송을 냈어.

신변 보호를 위해 본명 대신 ‘제인 로’라는 가명을 사용해 진행한 이 소송은 당시 법률 집행 검사장이었던 ‘헨리 웨이드’를 상대로 제기됐지. 1973년, 미 대법원까지 올라가게 된 이 소송에서 대법관들은 7:2로 ‘여성은 임신 후 6개월까지 임신중절을 선택할 헌법상의 권리를 가진다’며 로(맥코비)의 손을 들어줬어. 이 역사적인 소송은 두 사람의 성을 따 ‘로 대 웨이드’라 불려. 판례 후 미 전역에서 약 6천200만 건의 임신중절 수술이 합법적으로 시행됐단다.

한데 이번에 미 대법원이 ‘15주 이상의 태아에 대한 낙태를 금지하는 미시시피주 법안이 위헌이 아니’라고 판결함으로써 ‘로 대 웨이드’ 이전으로 돌아가게 된 거야. 또 소송을 걸어서 뒤집으면 되지 않냐고? 현재 미 대법원은 9명 중 6명이 보수, 3명이 진보적 성향인 판사들로 구성돼 있어. 문제는 한국과 달리 미 대법원 판사는 종신직이라는 거야. 한 번 임명되면 사망하거나 본인이 물러나지 않는 한 그 직위가 끝까지! 보장되거든. 선출되지 않은 권력임에도 영향력은 가히 핵폭탄급이랄까?






낙태권 허용 ≠ 낙태율 상승

낙태 문제에 무 자르듯 쉽게 답을 낼 수 없는 이유는 태아가 산모의 몸의 일부라는 특수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야. 낙태권 폐지를 주장하는 측에서 “여성의 선택권을 위해 태아의 생명권을 침해하는 행위는 옳지 않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지.

한데 정말 낙태권 허용이 낙태율 상승을 부를까? ‘낙태하기 쉬울수록 낙태를 덜 한다’는 역설이 있어. 실제로 지난 2017년, WHO 협력기구인 미국 구트마허연구소는 낙태가 합법인 국가일수록 낙태율 감소가 뚜렷하다는 보고서를 내놨어. (1967년 거의 모든 인공임신중절을 허용한) 영국의 2005년 낙태율은 같은 해 낙태를 법으로 엄격하게 규제한 우리나라보다 약 2배 낮은 수치를 기록했고, 1952년 이후 낙태권을 제도화한 일본과 1988년 낙태를 전면 허용한 캐나다도 낙태율이 계속 낮아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지. 낙태율 세계 최저국인 스위스를 포함,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과 호주, 중국도 여성의 출산하지 않을 권리를 법으로 보장하고 있고.

그렇다고 낙태권의 무조건적인 옹호도 곤란해. 현실적 문제 때문에 윤리적 문제를 저버린다면 이 또한 옳지 않으니까.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낙태권은 어떤 상황인지 한 번 살펴볼까나?


대한민국 낙태법 ‘3년 입법 공백’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낙태율과 가장 낮은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야. 낙태금지법이 ‘엄격하게’ 시행되고 있음에도 지난 2017년 대한산부인과의사회의 발표에 따르면 연간 110만여 건의 낙태가 이뤄지고 있다고 해. (신생아 출산은 30만3천100여 명….)

우리나라에서 낙태금지법은 진즉에 폐지되지 않았냐고? 많은 이들이 2019년 낙태금지 관련 법안에 대한 헌재의 ‘헌법 불합치 판정’을 ‘낙태 전면 허용’으로 해석하고 있는데 천만의 말씀이야. 기존 낙태금지법이 여성의 자기 결정권 행사를 과도하게 제한한다고 여겨 이 같은 판결을 내렸지만, 지금도 우리나라는 낙태가 전면 허용된 국가는 아니란 거지. 즉 특정 상황에 따라 여전히 낙태에 대한 처벌이 내려질 수도 있다는 얘기야.

헌재는 2020년 말까지 기존 낙태금지법을 보완한 입법을 국회에 주문했어. 태아 생명권과 여성 선택권을 모두 존중할 수 있는 기준을 정하라는 거였지. 하지만 지금껏 국회는 답을 내놓지 않았어. 입법 공백 상태란 뜻이야. 여야 간 입장 차에다 여성계와 종교계, 의료계도 각기 다른 주장들을 내놓고 있어 국회 입법 과정은 앞으로도 쉽지 않을 전망이라고 해.

하지만 모든 것에 앞서 가장 중요한 건 낙태와 출산의 모든 고민과 책임을 여성만의 몫으로 던져선 안 된다는 거야. 오늘도 아이를 낳아 기를 형편이 못 되는, 사연을 가진 많은 여성들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수술대에 오르고 있어. 낙태권을 보장하느냐 마느냐에 앞서 경제적인 문제나 사회적 여건 등을 감안해 실질적으로 어떻게 여성과 태아의 생명을 보호할 것인지가 먼저 논의돼야만 하는 이유야. ‘로 대 웨이드’ 판결로 우리 국회도 3년 만에 ‘뜨끔’했다니 이제 어떤 결론을 내릴지 눈 크게 뜨고 지켜보자고!




어느 때보다 많은 뉴스가 쏟아지는 요즘입니다. 문제는 제대로 된 정보를 걸러내고 해석하기 어렵다는 거죠. 과학 기술의 발전, 가치관의 변화,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청소년의 실생활과 밀접하거나 알아두면 도움이 될 이슈를 콕 집어 알기 쉽게 풀어드리겠습니다._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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