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사진 윤소영 리포터 yoonsy@naeil.com
공포의 ‘수강 신청’
“아, 다 망했어! 학교 서버는 터지고 겨우 두 과목 신청했는데…. 다 마감이야! 다들 너무너무 빨라~”
대학 새내기 큰아이는 첫 수강 신청에 친구와 새벽부터 PC방에 자리 잡고 고성능 컴퓨터로 성공적인 수강 신청을 시도했으나 장렬히 패배하고 귀가했었습니다.
“OO이는 다 성공했대. 대학생 오빠가 도와줬다고. ㅠㅠ”
툴툴대던 게 엊그제인데 벌써 1학기가 끝나 갑니다. 그간 선착순으로 접수하는 경품, 행사·강연, 공연·야구 티케팅 등으로 내공을 팍팍 쌓아 승률이 높아지고 있네요. 여름 계절학기 수강 신청도 가뿐히 넘겼고요.
몇 년 전 학원 인기 강좌 접수, 대형 강의 앞자리 등을 위해 현장에서 길게 줄을 서던 기억이 납니다. 추운 겨울이나 더운 여름, 방학 특강을 위해 온 가족이 번호표를 들고 돌아가며 긴 줄에서 고생했다는 열혈맘들의 무용담은 전설처럼 전해지고요. 코로나19로 인해 디지털로 하나씩 바뀌면서 이젠 대세가 된 구글 폼이나 각종 앱에서의 선착순 수강 신청! 순간의 클릭으로 결정되는 운명이 그저 두려울 따름입니다.
“엄마, 나 금요일 8시에 자유학년 선택 과목 수강 신청!”
“걱정 마. 클릭 도사 누나가 도와줄 거야!”
앱을 켜고 연신 새로고침 버튼을 누르며 1순위에서 성공했으나 흥분은 잠시뿐. 정작 ‘마감’은 다른 과목만 되네요. ㅎㅎ
“아~ 취향이 다르면 되는구나. 행복은 나름의 선착순!”
효도 티케팅
“얘, 너 임영웅 콘서트 티켓 구할 수 있겠니?”
전화기 너머로 조심스러운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엄마, 아니~ 인파에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시려고….’ 자동으로 나오는 잔소리 모드를 꾹 삼켰어요. 모처럼의 부탁인데 노년에 접어든 엄마의 마지막 소녀 감성을 지켜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마침 ‘가정의 달’ ‘어버이 주간’이었네요.
“전 자신 없는데, 아마 애들은 할 수 있을 걸요. 부탁해볼게요.”
“오케이~ 일단 네이비즘으로 알람 설정하고….” “누나, 매크로 돌려?” “야, 그건 너무 오버지!!”
알아듣기도 힘든 전문 용어를 남발하며 모처럼 할머니를 위해 부여된 임무에 들뜬 남매! 공부만 아니면 뭐든 의기투합해서 참 잘하더라고요. ㅎㅎㅎ
“아싸~ 성공!!” 눈앞에서 빛의 속도로 사라지는 자리를 겨우 하나 잡았네요. ‘혼자’라도 꼭 가시겠다는 엄마. 이로써 모처럼 모녀의 1박 2일 창원 나들이가 급조됐어요.
파란 티셔츠 가방 스카프 마스크 응원봉! 콘서트장 마당 굿즈로 팬심 가득 중무장하고 콘서트를 즐기신 엄마는 10년은 젊어진 듯 너무나 신나 보이셨어요. 힘찬 박수로 손과 팔이 아프고 떼창으로 목이 쉬어도 그저 좋으시답니다. 몇 년 전 BTS 공연을 다녀와 흥분을 감추지 못했던 큰아이의 모습이 보입니다.
“얘, 오길 잘했어. 너무 감동적이고 너무 멋있다!”
‘엄마 좋으면 나도 좋지. 고마워! 얘들아~ 다음번에도 부탁해~ ㅎㅎ’
클릭에 노련한 아이들 덕분에 제가 대신 효도합니다.
매일 비슷해한 일상 속 특별한 날이 있죠. 학생, 학부모들의 이야기를 다채롭게 담는 코너입니다. 재밌거나 의미 있어 공유하고 싶은 사연 혹은 마음 터놓고 나누고 싶은 고민까지 이메일(lena@naeil.com)로 제보해주세요._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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