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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호

핫 토픽 ‘쫌’ 아는 10대 20 | 장애인 이동권 _ 출근 길 막아선 장애인들의 절규

“이동의 자유는 인권이다!”

지난 12월 20일 월요일 출근길 아침, 서울 지하철 5호선이 멈췄다. 장애인 단체의 시위 탓에 원활한 배차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지하철 안내방송이 나오자 시민들은 분노했다. ‘시간 맞춰 출근해야 하는 우리도 약자다!’ ‘국회 앞에서 해라, 왜 힘없는 시민들을 볼모로 하나’ ‘내가 늦은 건 어떻게 보상해줄 거냐?’ 등 해당 사건을 다룬 기사의 댓글은 부정적 의견으로 가득했다. 장애인들의 출근길 시위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하철역 시위는 지난 한 해에만 8번 진행됐다. 시위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대개 싸늘하다. 공공질서에 해로운 행위로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애인들은 되묻는다. ‘공공의 의미와 기준이 뭔가, 우리에겐 이 도시를 누릴 권리는 없는가?’ 20년째 여전히 진행 중인 ‘장애인 이동권 쟁취 투쟁사’를 담아봤다.

취재 김한나 리포터 ybbnni@naeil.com
사진 연합






1STEP 11 이슈 맛보기





1‘12월 20일 무상이가 지각하던 날’방1

무상이 내일아, 크… 클났어! 나 아무래도 제때 도착 못할 거 같아! 담임쌤 화내심 어쩌지?

내일이 혹시 5호선 탄 거야? 걱정 마, 아직 많이들 못 왔어. 아무래도 열차 지연 시간이 길어질 거 같으니까 내려서 광화문행 버스 타는 게 빠를 거야. 세종문화회관까진 찾아올 줄 알지? 공연 시간만 맞추면 지각 처리 안 한다고 쌤이 말씀하셨으니 안심해.

무상이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왜 하필 장애인 분들은 우리 간만에 체험학습 하는 날 시위를 하고 그러시냐고~ 본인들 이동권은 보장해달라고 하면서 내 이동권은, 우스워? 나 지각하면 책임져줄 거야?

내일이 워워~ 친구, 진정하시고~ 어디까지 왔냐?

무상이 이제 지상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탔다. 지하철역 출구 계단이 무섭게 많아서 저걸 어떻게 걷나 했는데 다행히 옆에 얘가 있었네.

내일이 무상아, 그 엘리베이터 장애인 분들이 목숨 걸고 투쟁해서 만들어낸 결과물이야. 짜증이 급 감사함으로 바뀌지 않냐? 놀란 너의 비명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 ㅋㅋㅋ 어서 와라 친구야~ 네가 좋아하는 저상버스에 담긴 이야기도 들려줄 테니까!



1STEP 21 이슈 꼼꼼 분석하기


200년 전에는 ‘장애인’이 없었다!?

이 무슨 조선 시대 심청이 아빠 심봉사가 놀라서 눈뜰 소리냐고? 진정하고 설명을 들어봐.
고고학자나 인류학자마다 추정 연도에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인류의 직계 조상인 호모 에렉투스가 출현한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200만 년 전이라고 해. 그때부터 대략 200년 전까지, 그러니까 199만9천800년 동안은 인간 사회에 정말로 ‘장애인’이란 단어가 존재하지 않았어.

물론 어느 시기, 어느 곳에서나 팔다리가 불편한 사람,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 듣지 못하는 사람, 다른 이들보다 발달이 더딘 사람 등은 늘 존재했지. 그럼에도 인류는 사람의 범주를 장애인과 비장애인으로 나누지 않았다는 의미야. 장애인이란 말 자체가 없는데 어떻게 누군가를 장애인으로 칭하고 구분할 수 있었겠니.

그렇다면 왜 존재하지 않았던 장애인이란 범주가 급 만들어졌을까? 전문가들은 ‘근대 자본주의 체제로의 이행’을 그 원인으로 파악하고 있어. 즉 산업혁명 이후 ‘노동을 할 수 있는 효율성’을 기준으로 사람을 분류했다는 거지. 그러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사이 소위 ‘정상적인’신체를 지녔다고 간주되는 사람들을 ‘기준’으로 사회가 설계되고 구축되고 굴러가게 됐다는 거야.

그럼 당연히 권력은 어디로 쏠린다? 말해 뭐 해~ 다수를 차지하는 비장애인이겠지!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1도 없는데 권력은 무슨 권력이냐며 화를 내는 네 심정, 이해해. 또 뭘 잘못해서 핸드폰은 압수당한 거니? 쯧쯧~ 그럼에도 신체적이든 정신적이든 몸에 손상이라 간주될 만한 이상이 없다면 넌 비장애인이자 권력을 지닌 사람이고 이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야.


넘을 수 없었던 ‘10cm 장벽’

1952년 부산에서 태어난 김순석 아찌는 5살 때 앓은 소아마비의 후유증으로 한쪽 다리가 불편했어. 이 씩씩한 아찌에게 그 정도쯤은 아무것도 아니었어. 뛰어난 손재주와 타고난 성실함이라는 무기를 지녔거든. 덕분에 19살에 서울로 올라와 금은세공 기술을 익히며 실력을 인정받아 작은 공장의 공장장까지 맡게 됐지.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까지 일구자 그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어. 1980년 교통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진. 두 다리에 철심이 박히고 더 이상 걸을 수 없게 된 그는 휠체어에 의지한 채 남은 생을 살아가야만 했어. 두 손과 뛰어난 세공 기술은 그대로였지만 거래처에선 ‘사지 멀쩡하지 않은 사람의 제품’이라며 가격을 마구 깎았고 거래 대금을 떼먹기도 했지.

하지만 그보다 더 괴로웠던 건 ‘보도블록의 10cm 턱’이었어. 시장에 나갈 때마다 그놈의(앗, 쏴리) 턱을 만나야 했고 주위에 애타게 도움을 요청해야 했지. 인도에 오르지 못해 차도를 따라 낑낑거리며 이동하던 어느 날, 경찰은 도로교통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아찌를 끌고 가 유치장에 가뒀어. 커다란 절망은 아찌를 심연의 바다로 빠뜨렸고 1984년 사랑하는 아내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5살 아들을 남긴 채 34살의 나이로 목숨을 끊었지.


“시장님, 왜 저희는 골목골목마다 박힌 식당 문턱에서 허기를 잡고 돌아서야 합니까. 왜 저희는 목을 축여줄 한 모금의 물을 마시려고 그놈의 문턱과 싸워야 합니까. 왜 저희는 횡단보도를 건널 때마다 지나는 행인의 허리를 붙잡고 도움을 호소해야만 합니까. 택시를 잡으려고 온종일을 발버둥치다 눈물을 흘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그까짓 신경질과 욕설이야 차라리 살아보려는 저의 의지를 다시 한 번 다져보게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도대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지 않는 서울의 거리는 저의 마지막 발버둥조차 꺾어놓았습니다.”
_ 김순석 유서 중 일부 발췌


보통 사람에게는 별 문제가 안 되는 10cm 보도턱은 누군가에겐 목숨을 끊을 정도로 암담하게 높은 장벽이었던 거야. 그의 죽음으로부터 13년 뒤, 계속된 장애인들의 노력으로 결국 보도턱을 없앤다는 법령이 세워졌어. 현재 서울을 포함한 전 지역의 인도를 휠체어나 유모차, 자전거, 캐리어까지 불편함 없이 진입·이용할 수 있게 된 데는 이런 역사가 담겨 있단다.


죽음으로 보도턱을 없애달라고 외친 김순석. 출처 장애인재활협회



1STEP 31 생각 그릇 키우기


지하철역 승강기 설치와 저상버스 도입에 대해

1999년, 서울 혜화역에서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하던 장애인이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어. 같은 해 천호역에서도 리프트가 추락 직전까지 가는 아슬아슬한 상황이 벌어졌지. 그러다 2001년 개통된 지 6개월도 안 된 경기도 안산의 오이도역에서 동일한 사고로 장애인 한 분이 목숨을 잃었지.
이 사건은 그동안 억눌러왔던 장애인들의 분노를 폭발시킨 기폭제가 됐어.

장애인들은 대책위원회를 꾸려 반복되는 문제를 해결해달라며 서울시와 정부를 향해 이동권 보장을 요구했지만 수개월째 돌아오는 건 ‘검토하겠다’는 답변뿐이었어. 2002년 서울 발산역에서 또 같은 사고로 장애인 한 분이 유명을 달리하자 장애인들은 투쟁을 결심했지. 자신들의 이동권이 얼마나 무시되고 있는지 증명해보이기로 한 거야.

휠체어 장애인들의 ‘지하철 타기’ 행사가 시작됐어. 그리고 지하철은 제때 움직이지 못했지. 그들이 한 일은 지하철을 탄 것뿐이었지만 장애인의 이동권을 고려하지 않은 교통수단은 그들이 승차를 결심한 순간 멈춰버린 거야. 곧이어 ‘장애인도 버스를 탑시다!’ 행사가 진행됐고 도로 위 버스는 출발하지 못했어. (지금의 저상버스를 생각하면 곤란해. 그건 장애인들의 목숨 건 투쟁의 결과물이니까.)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변화가 없자 장애인들은 39일간 단식투쟁을 벌였고 결국 지하철 승강기와 저상버스 도입을 약속받게 됐단다.


우리는 모두를 위한 싸움을 한다!

2004년까지 모든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겠다던 약속은 1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켜지지 않고 있어. 그사이 2017년에는 서울 신길역에서 또다시 휠체어 리프트 추락 사고가 일어나 또 한 분의 목숨을 앗아갔지. 2021년까지 저상버스 비율을 42%로 높이겠다고 했지만 겨우 27.8%…. 지금껏 계획대로 역사에 승강기가 설치되고 저상버스가 도입된 경우는 단 한 차례도 없었어. (부끄럽다 부끄러워~ 약속은 지키라고 하는 거 아닙니꽈?)

코로나19는 우리 모두에게 이동의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인간의 기본권인지 절실히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됐어. 그런데 곰곰 생각해봐. 이 땅의 수많은 장애인들은 삶 자체가 늘 코로나 시국이었던 거야. 한 장애인은 출근길 지하철역 시위 도중 불만을 토로하는 시민에게 “잠깐의 불편과 지연이 그렇게 화가 나십니까? 저는 30살이 돼서야 첫 외출을 했습니다”라고 울먹이며 말했어. 그러면서 장애인 이동권을 ‘시혜와 동정의 문제’로 보지 말고 ‘이 땅의 국민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로 봐주길 요구했지.

한 사람이 태어나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기 위해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영역에서 균등한 기회와 참여를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해. 어떤 신체조건을 가졌든지 말야. 이를 실행하려면 기본적으로 이동이 자유로워야만 하고. 때문에 사람을 일컬어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지. 결국 장애인들의 투쟁은 ‘함께 살자’는 간절한 호소인 거야.

장애인들이 수많은 시간 욕을 먹어가며 쟁취해낸 지하철역 승강기와 저상버스는 장애인을 비롯해 교통약자로 분류되는 어르신들과 임산부, 어린이, 영유아를 동반한 사람들에게 편리함을 안겨줬어. (그래, 걷기 싫어하는 너에게도.) 즉 장애인이 대중교통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면 일반 시민들은 그보다 훨씬 더 편리한 이동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거지.

너도 엄마, 아빠가 될 수도 있고, 언젠간 늙을 거잖니. 훗날 모든 지하철역사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고 모든 버스가 저상버스로 바뀌고 나면 우리 모두는 깨닫게 되겠지. 오늘의 장애인의 투쟁은 결국 모두를 위한 처절한 싸움이었다는 걸. 우리 주변에 장애인들이 잘 보이지 않는 건 그들이 외출을 싫어해서가 아님을, 혼자 있는 걸 좋아해서가 아님을 꼭 기억하길 바라.

한 사회가 얼마나 선진화됐는지는 ‘약자를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난다지? 누구나 이동에 제약받지 않고 자유를 누리는 사회와 몸이 불편하면 외출이 금지되는 사회, 넌 어디서 살고 싶니?





어느 때보다 많은 뉴스가 쏟아지는 요즘입니다. 문제는 제대로 된 정보를 걸러내고 해석하기 어렵다는 거죠. 과학 기술의 발전, 가치관의 변화,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청소년의 실생활과 밀접하거나 알아두면 도움이 될 이슈를 콕 집어 알기 쉽게 풀어드리겠습니다._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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