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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4호

알아두면 있어 보이는 TMI 41 | 바이킹 _ 뿔 달린 투구 쓴 해적? 놉!

알고 보면 멋쟁이 탐험가 ‘바이킹’

뿔과 날개가 달린 투구를 쓰고 덥수룩한 수염이 한가득인 험상궂은 얼굴로 배를 타고 나타나 무차별 살상을 자행하며 약탈을 일삼던 해적 중의 해적! 그게 우리 바이킹이라고!? 잠깐, 거울 좀 보고 올게. 야~ 완전 아닌데? 청결과는 담 쌓은 당시 유럽 남성답지 않게 깔끔히 면도한 얼굴, 단정한 헤어스타일, 여성에 대한 매너마저 출중했던 훌~륭한 바이킹들에게 이 무슨 결례 되는 정의냐고.
너의 그 오해를 지금부터 말끔히 해소해주겠어!

취재 김한나 리포터 ybbnni@naeil.com 사진 위키백과


# 악마의 투구를 쓴 해적?

7~11세기,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살던 노르만인들 중에 도전의식이 넘치고 모험을 즐기던 무리가 있었어. 무리는 남녀 구분 없이 다양한 지역 출신의 농부, 어부, 대장장이 등 각종 직업을 가진 이들로 구성됐고 함께 바다와 강, 호수 등을 누비며 항해했지. 빙고! 그게 바로 우리 바이킹이야. 그러니 ‘바이킹족’이라는 표현은 틀린 거지. 바이킹은 특정한 민족을 뜻하는 용어가 아닌 공동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만들어진 집단이니 말야.

바이킹 하면 바다를 누비는 야만적인 강도 이미지를 떠올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건 진심 오해란다. 우리 후손들이 세운 나라를 한 번 봐봐.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이들 세 나라의 사회복지와 양성평등 수준은 세계 최고 아니니? 열린 사고, 신념과 용기, 공동선을 추구하는 협동 정신이야말로 우리를 설명하는 단어들이지.

그럼 ‘악마의 뿔과 날개 달린 투구를 쓴 해적’으로 왜 우리가 그려졌냐고? 그건 다! 독일 작곡가 바그너 때문이지. <니벨룽겐의 반지>라는 오페라 작품의 극적 효과를 위해 우리에게 그런 말도 안 되는 투구를 씌우고 헐크처럼 괴력을 지닌 존재로 부각시킨 거야.

훗날 우리가 실제 사용한 밋밋한 투구(그나마 잘 쓰지도 않았어)가 발견됐지만 이미 수많은 화가들에 의해 그림으로 전해지고 문인들에 의해 글로 남아 각인된 이미지는 쉽사리 변하지 않더구나. 이렇게 너에게라도 알려주게 돼 정말 다행이지 뭐야.




# 잔혹한 약탈자 바이킹?

우리의 고향 북유럽은 추운 데다 일조량도 부족해. 농사를 짓기 적합하지 않으니 늘 굶주림과 싸워야 했지. 혹독한 자연 조건은 새로운 농경지 확보라는 숙원 사업에 우리를 뛰어들게 했어.

그런데 생각해봐. 갑자기 누가 너희 집에 찾아와 ‘지금 사는 곳이 춥고 먹을 것도 없거든요. 여긴 좋네요. 저희한테 방 한 칸만 주실래요?’라고 하면 어서 오시라고 할래? 결국 어쩔 수 없이! 침략과 약탈을 하게 됐지.

배를 타고 가다 물길이 끊기면 배를 들고 뛰며 강과 바다가 나올 때까지 달릴 정도로 (비겁한 변명이라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군) 뭐든 열심인 우리다 보니 영국,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는 물론 더 나아가 러시아와 북아프리카까지 손에 넣게 됐어.

아메리카 대륙에도 우리가 콜럼버스보다 500년 먼저 발을 디뎠다는 사실, 알고 있니? 비록 성공적으로 이주를 하지 못해 기록에선 새카만 후배에게 밀렸지만 말이지. ‘그린란드’도 우리가 발견하고 개척한 땅이야.

그렇다고 우리가 약탈만 일삼은 건 아냐. 해적에 종사(?)한 인원은 극소수란다. 우리 구성원 대다수가 어부와 농부라고 했잖니. 배를 타지 않는 대부분의 시간에는 새롭게 정착한 땅에서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길렀어. 평화주의자들이라니까! 또한 뛰어난 상인이기도 했지. 당시 유럽과 아랍을 잇는 무역도 우리의 주도로 이루어질 정도였다니까.




# 뷔페식 즐기던 멋쟁이들

마음에 드는 요리를 접시에 종류별로 담아 몇 번이고 즐길 수 있는 뷔페, 원조가 누구? 오~ 눈치 빨라! 며칠씩 배를 타고 항해를 하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배가 몹시 고플 거 아니니. 금강산도 식후경인데 먹어야 일(?)을 하지.

문제는 밥하고 치우고 하려면 시간이 너무 많이 든다는 거야. 그러니 하는 수 없이 음식부터 약탈해오는 거지. 집집마다 수거해온 음식들을 커다란 널빤지에 늘어놓고 함께 축배를 들며 즐긴 우리의 식사 풍습이 ‘뷔페’의 원조란다.

또 우리는 청결과 위생에 철저했어. 당시 유럽 사회에선 면도나 미용은 돈 많은 귀족이나 가능했지만 우린 남녀 모두 빗과 면도기, 면봉까지 개인별로 구비했을 정도였지.

시대를 앞지를 만큼 여성의 지위가 높았던 것도 우리의 자랑이야. 바이킹은 남녀 구분 없이 모집한다고 했지? 여성은 남성과 동등하게 재산을 소유할 수 있었고 당당하게 이혼을 요구할 수도 있었어. 300여 년에 걸쳐 유럽 전역을 누비고 다녔던 우리는 13세기 초 기독교를 수용했고 특유의 용맹성을 발휘해 십자군 전쟁에서 이슬람 세력과의 대결에 앞장서기도 했지.

허락된 지면에 우리의 진면목을 다 담을 수 없어 몹시 아쉽군. 그럼에도 왜 뷔페식을 운영하는 식당에 바이킹이라는 이름이 많이 쓰이는지는 알겠지? 다음에 기회가 되면 우리의 풍성한 탐험 이야기를 꼭 들려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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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트 20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