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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0호

EDU CULTURE | 알아두면 있어 보이는 TMI 39

악의 대명사 VS 숭배의 대상 내 팔자 왜 이럴까? ‘문어’

디즈니 만화영화 <인어공주>의 주인공 ‘에리엘’의 목소리를 빼앗은 ‘우르슬라’, 영화 <캐리비안 해적>의 괴물 ‘데비존스’, <인디펜던스데이> <우주전쟁> <컨택트> 등 SF영화의 외계 생명체, 첩보영화 <007스펙터>와 액션영화 <스파이더맨>의 악당. 여기까지 듣고 떠오른 주인공은? 그래~ 서구영화 속 악역 단골손님, 나 ‘문어’야. 아니, 예부터 대한민국의 제사상에도 오를 만큼 사랑받는, 게다가 맛 좋고 영양가도 높은 나를 왜 이런 식으로 취급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흥분하지 마~ 손에 든 자갈치 과자 쏟아질라. 이제부터 내 아픈 이야기를 들려줄게.

취재 김한나 리포터 ybbnni@naeil.com 사진 위키백과



#. 악마의 물고기(Devil fish)

양념갈비, 삼겹살, 보쌈, 족발, 제육볶음… 모두 너희가 못 먹는 음식들이지, 없어서. 하지만 지구상에는 생각만 해도 군침 넘어가는 이 돼지고기 요리가 금지된 나라도 있어. 바로 이슬람교를 믿는 중동의 여러 국가들이 그렇단다. 유대인들에게도 돼지고기는 금지 식품이지.

또 힌두교를 믿는 인도에서는 종교적인 이유로 소 도축이 금지돼 있다는 사실은 너무도 유명하고. 과거의 율법을 아직도 따르다니 너무 심한 거 아니냐고? 흠, 현재 싱가포르는 껌의 수입과 판매를 금지하고 있고 호주와 캐나다에선 생우유를 금하고 있어. 프랑스는 학생들에게 일주일에 한 번만 케첩 먹기를 허용해. 이렇듯 나라별로 종교·문화적 관습을 이유로 금지하는 식문화가 존재하고 있고 우리는 이를 ‘틀렸다’가 아닌 ‘다양성의 존중’이라는 차원에서 받아들이는 자세를 갖춰야만 할 거야.

그.러.나. 내가 왜 ‘악마의 물고기’냐고! 또 혈압이 고공 행진하네.
사실 서구에서 나에 대한 혐오와 공포는 그 역사가 짧지 않아. 성경의 구약성서 ‘레위기’ 11장에서는 ‘강과 바다에 있는 것으로서 지느러미와 비늘이 없는 것은 너희에게 가증한 것이니… 수중생물에 지느러미와 비늘이 없는 것은 너희가 혐오할 것이라’라고 하며 그것을 먹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지. 연체동물인 난 당연히 비늘과 지느러미가 없어.

덕분에 먹성 좋은 인간들에게 잡아먹히지 않고 편히 살긴 했다만,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고 그 뒤부터 나를 신화 속 괴물 ‘크라켄’으로 표현하질 않나, 지구를 위협하는 외계 생명체로 그리질 않나. 뭐 영화나 소설에 등장하는 괴물은 전부 나더라니까! 독일에 살던 우리 동족 ‘파울’은 인간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다며 2010년 축구 경기 결과까지 친절하게 예언해주고 했건만. 파울 바보.





#. 현명함의 상징이자 용왕의 충신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서구에서 그렇게나 모질게 핍박받던 나를 동양에서는 귀하게 대접을 해주더라~ 눈물나게.
내 이름부터 문어(文魚), 먹물이 가득한 유식한 물고기라 부른 거 봐봐.

동양은 전통적으로 무(武)가 아닌 문(文)을 숭상했다는 건 유명한 사실이잖아. 또 다른 물고기들과 달리 내가 사람처럼 머리가 크고 다리가 있는 점잖은 동물이라며 인정해주기까지 했어. 특히나 한국에선 나를 ‘머리에 글을 쓸 수 있는 먹물이 가득한 현명한 동물’이라며 ‘엄지 척!’을 보내고 제사상과 혼례상 등 관혼상제나 임금님 수라상에도 올리더라고. 특히 경상도 해안 지역에서는 결혼이나 생일잔치에 내가 안 나타나면 잔치로 인정을 안 할 정도라나 뭐라나. 음하하하.

또 간 내놓으라는 날강도 자라에 맞서 간은 빼고 다닌다고 사기 친 토끼의 이야기를 그린 고대 소설 <별주부전>에선 나를 용왕님의 충신으로 그려놨어. 이건 정말 훌륭한 발상이야. 도대체 한국인들은 그 옛날에 내가 똑똑하다는 사실을 어찌 알았을까?

무척추동물을 통틀어 나는 몸의 크기 대비 뇌 용량이 가장 크고 그에 걸맞게 영리하다고 정평이 나 있어. 주변 움직임을 흉내 내거나 모방할 수 있고 (내가 산호랑 똑같이 변신하는 모습이랑 말미잘로 위장하는 모습을 보면 놀랄걸?) 높은 사고 능력과 학습 능력을 지녔거든. 일부 학자들은 내 지능이 댕댕이와 맞먹을 거라 장담하고 있고. 어때? 용왕의 오른팔이자 바다의 현자라 불릴 만하지?

동서양에서 다른 대우를 받고 있는 내 이야기 잘 들었니? 아, 네가 젤 좋아하는 간식이 일본의 문어 풀빵 ‘다코야키(takoyaki)’랑 문어맛 자갈치 과자라 거의 매일같이 나를 만나고 있다고? 음… 안 잡아먹히고 미움받는 게 좋은 건지, 잡아먹히며 사랑받는 게 나은 건지 오늘부터 고민을 좀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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