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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칼럼

974호

시나브로 학교 ⑧

칠판 대화

올해 초, 교장실 앞에 작은 칠판을 걸었다. 우리 학교 교장실은 2층에서도 가장 구석에 있다. 그렇다 보니 학생들의 발길이 뜸하다. 교장실은 복도를 가로막아 사용하다 보니 밖을 볼 수 없다. 그 답답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처음에는 문을 아예 열어놓았다. 누구나 쉽게 드나들라는 의미였다. 에어컨을 켜거나 난방기구를 사용할 때가 아니면 대부분 교장실 문을 열어놓았지만 워낙 아이들 왕래가 뜸한 곳이라 하루 종일 조용했다. 혼자 책 읽고 구상하기는 더없이 좋은 구조다. 이러다가는 고립되기 딱 좋겠다 싶어 탈출 방법을 생각했다.

그중 하나가 칠판을 내거는 거였다. 과연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호응할까 싶었지만 그래도 낙서는 만인의 공통 언어가 아닌가. 도시 어느 골목이든 낙서가 있다. 그걸 굳이 어려운 미술 용어로 말하지 않더라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는 어디나, 누구에게나 있다.

깔끔하게 정리된 복도에 칠판 하나를 거는 것도 사실은 눈치가 보였다. 뭐 대단한 것도 아닌데 유난을 떤다고 오해할 것 같았다. 하지만 더 간절했던 것은 아이들과의 대화였다. 말하고 싶었다. 그냥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절주절 떠벌리고 싶을 뿐이었다. 그렇구나. 나이 들면 끊임없이 말하고 싶어 하고, 젊은이들을 귀찮게 한다더니 바로 내가 그 꼴이구나. 그러면 어때. 이 정도의 탈출구는 만들어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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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일교육
  • 김덕년 교장
  • COLUMN 특별기고 (2020년 10월 28일 9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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