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교육

964호

EDU TALK | 소소(笑笑)한 일상 나누기

코로나19와 사춘기

엄마가 사춘기(?)

잠이 많은 사춘기를 ‘잠춘기’라고 하던데, 저희 아들도 중학생이 되고서부터 잠이 많아졌어요. 코로나19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더 야무지게(?) 자더라고요. 아침 알람이 울리면 온라인 수업 출석 체크만 하고 다시 숙면 돌입. 점심 때가 훨씬 지나 가까스로 일어난답니다. 늦게 일어났으니 할 일이라도 빨리 했으면 좋겠는데 느긋하게 휴대폰 보며 점심을 먹고, 소파에 누워 모바일 게임 삼매경. 속이 터집니다.

저녁 시간, 아프지 않고 건강한 것에 감사하며 아들이 좋아하는 찜닭을 대령했죠. “아들, 많이 먹어~ 잘 자고 잘 먹고 건강한 게 최고지!” 아들의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데 아들 친구의 엄마로부터 메시지가 왔어요. 얼마 전부터 자기 아들이 책상에 명언 하나를 붙여놓더니 방에서 나오지도 않고 ‘열공’한다고. 그 순간 예쁘게 밥을 먹던 아들은 사라지고 온종일 먹고 노는 ‘건강한 꿀꿀이’가 앉아 있지 뭐예요?

“엄마, 찜닭 맛있다. 밥 더 없어요?”라는 아들의 물음에 “그만 먹어!” 소리를 치고, 밥숟갈을 뺏어 분노의 설거지를 시작했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눈치 빠른 아들은 방에 들어가고 없네요. 코로나19로 아이와 종일 붙어 있다 보니 엄마의 마음도 사춘기 아이 마냥 롤러코스터를 타나 봅니다.


예쁜 아들을 ‘건강한 꿀꿀이’로 바꿔놓은 아들 친구의 책상 위 메모.



단톡방의 은밀한 뒷담화

바깥 모임도 쉽지 않은 요즘, 엄마들끼리 단톡방에서 대화를 많이 나눠요. 어느 날, 사춘기 아이들의 지저분함에 대한 열띤 토로가 이어졌습니다. 아이를 따라다니며 치우느라 하루가 다 간다는 하소연부터 잘 씻지 않는 아이 덕분(?)에 코로나19 전부터 생활 속 거리 두기를 실천하고 있다는 집까지 사연이 다양하네요.

사용한 물건을 제자리에 가져다놓지 않는 경우는 다반사. 아이 책상 위에 놓인 대여섯 개의 컵 사진을 단톡방에 공유함과 동시에 ‘우리 집 상황’이라며 아이 방에 수북하게 쌓인 수건이며 양말들이 인증숏으로 속속 올라옵니다. 여자아이도 속옷과 바지를 함께 뒤집어서 벗어놓기 일쑤라 슈퍼맨, 아니 원더우먼 덕후인 줄 알았다는 ‘웃픈’ 대화가 오갑니다.

어느 책에서 보니 방은 방주인의 뇌를 반영하고 있다고 하네요. 사춘기에는 뇌의 전두엽이 리모델링 공사로 어수선하고 복잡해, 물건이 아무렇게나 늘어져 있는 자신의 방이 지저분해 보이지 않는다는 거죠. 어쩌겠어요? 정리를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라니, 이제 잔소리 좀 줄이고 전두엽의 리모델링이 튼튼하게 마무리되길 바라는 수밖에요.


책상 위의 상태로 미루어 본 아들의 뇌는 지금 혼돈의 카오스.


예쁘게도 모아놓은 양말들. 4켤레인 것으로 보아 목요일로 추정.




오늘도, 내일도 내려놓기

한창 사춘기인 중2 딸과는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아요. 서로 말을 하면 할수록 자꾸 싸우다 보니 어느 순간 제가 입을 닫게 되더라고요. 요샌 중학교 첫 시험을 치르느라 따님이 더 예민해지셨습니다. 잘하고 있나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도 되지만 괜히 한마디했다가 되로 주고 말로 받을까 봐 참고 있네요.

아이와 말다툼을 하거나 마음이 심란할 때면 집 주변을 산책하거나 집 앞 도서관을 찾는데요. 도서관 한편에서 ‘아이의 방문을 열기 위해’라는 테마로 큐레이션을 진행하고 있었어요. 자리에 앉아 한참 책들을 살펴보다 보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들더군요.

아이는 지금 자기가 가진 그릇의 크기와 모양에 맞게 차곡차곡 잘 채워가고 있는데 엄마의 욕심으로 아이의 그릇에 맞지 않는 것들을 꾸역꾸역 채워 넣는 것은 아닌가 하고요. 이제 막 자신의 존재를 내뿜는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바라봐줘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는 사춘기를 겪으며 스스로의 힘으로 더 단단하고 반짝반짝한 모습으로 훌쩍 커 있을 테니까요.



도서관에 전시된 사춘기 관련 책들. ‘아이 혼내지 마라, 온 길이잖아’라는 문구도 가슴에 새겨봅니다.




몸도 마음도 하루가 다르게 커나가는 자녀들과 생활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해프닝도 마주하게 되죠. 황당하다 못해 웃음이 나거나, 속을 알 수 없어 눈물이 나거나, 어느새 다 자랐나 싶어 기특함도 느껴집니다. 소소하지만 웃으며 공감할 수 있는 일상의 이야기를 담아보려 합니다. 부모들의 해우소 같은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은 에피소드가 있다면 메일(lena @naeil.com)로 보내주세요. _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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