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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칼럼

946호

COLUMN

시나브로 학교 ① 덴마크 고등학교에서 배우다

김덕년 교장(경기 인창고등학교)


교육계에서 풀어야 할 수많은 과제를 우리 아이들의 시각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연세대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에서 국어를 공부하고, 온배움터(옛 녹색대) 생태교육과에서 생명이 중심이 되는 교육 생태계를 고민했습니다. 영원히 꿈꾸는 교사이고 싶은 교육 낭만주의자. 지은 책으로 <학교야, 훨훨 날자꾸나> <학교에는 꿈꾸는 아이들이 있네> <교육과정-수 업-평가-기록 일체화> <과정 중심 평가> 등이 있습니다.



겨울방학 기간 중 우리 학교 학생들과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류슨스틴 고등학교를 방문했다. 우리 학교와 국제교류를 하는 학교라 방문하는 내내 다양한 형태의 수업을 볼 수 있었다. 수업은 우리 학생들이 참관한 수업, 우리 학생들과 덴마크 학생들의 공동 수업, 덴마크 교사와 우리 학생들만의 수업 등 여러 조합으로 진행됐다. 특히 세 가지를 배울 수 있었으니, 그것은 시선, 수업, 공간 활용이다.



시선_ 교사도, 학생도 몸에 밴 경청


덴마크 교사나 학생들은 경청을 매우 잘한다. 습관처럼 상대방의 말에 집중한다.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듣는다. 도중에 자르는 일이 없다. 의견이 다르더라도 다 듣고 자기 얘기를 한다. 학생들이 질문할 때 교사는 학생에게 시선을 고정한다. 학생들의 이야기가 다소 엉뚱하더라도 잔잔한 미소로 끝까지 듣는다. 이런 모습은 동료들과 이야기할 때도 마찬가지다. 워낙 토론 문화에 익숙해서 인가 식사를 하면서도, 또는 걸어가면서도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 하는 모습은 너무나도 자연스럽다.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교사의 지목을 받아야 발표할 수 있다. 의견이 있으면 손을 들어 표시한다. 교사가 기회를 주어야 학생은 자기 의견을 말한다. 이때 다른 학생들은 열심히 경청한다. 반대 의견이 있더라도 차례가 올 때까지 기다린다. 눈을 맞춘다는 것. 그것은 경청이고 존중이다. 우리에게는 그리 익숙지 않다. 수줍음이 많은 우리네 성품으로는 빨려들 듯이 바라보는 시선에 부담감을 느낄 수도 있다. 말하는 이가 오히려 눈을 피하기도 한다.


최근 우리나라는 ‘과정 중심 평가’를 강조하고 있다. 교육부에서는 ‘과제형 평가’는 안 된다는 지침을 내렸다. 수업 중 평가를 완료하라는 의미다. 과정 중심 평가를 하려면 학생을 잘 살필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 어떻게 하면 학생부를 잘 쓸 수 있느냐고 물어 오는 교사들도 많다. 정규 교육과정이 중심이 되는 현 교육 환경 에서 이것저것 다양한 활동을 잔뜩 쓸 수도 없다. 그렇다고 미사 여구로만 채우기도 곤란하다. 결국 수업 시간에 학생을 잘 관찰 해야 가능한 일이다. 이런 측면에서 그들의 시선은 참 부러웠다.



상대방을 바라보는 시선, 그들은 상대방에 최선을 다해 집중한다.



수업_ 우리 아이들의 눈에 비친 덴마크의 수업


우리 학생들은 덴마크 수업이 신선하게 다가왔나 보다.


“선생님이 주제를 주면 학생들은 자유롭게 인터넷 검색을 하거나 선생님께 자문을 구한다. 주제에 대한 탐색이 끝나면 자신이 무엇을 조사했는지 얘기하며 서로 비교한다. 여기서 가장 놀란 점은 우리나라의 경우 시끄러워지면 선생님들이 조용히 하라고 제지하는 경우가 많은데, 덴마크의 경우 전혀 그렇지 않고 오히려 너무 조용하면 지적한다는 점이다.” _ 인창고 1학년 박준용


“한국 학생이라면 아주 싫어할 수 있는 수학 시간, 나는 덴마크 수학 수업을 경험하고 나서 충격을 받았다. 학생들이 보드판 위에 수학 개념을 스스로 풀고, 이해하고, 설명하는 것이다. 한국과 비교하면 매우 다른 수업 방식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수업’ 이다.” _ 인창고 1학년 오정호


“덴마크 아이들은 한국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처음 만난 아이들인데도 한국의 교육 제도, 수능 시험, 청소년 문화 등 다양한 질문을 많이 하더라.” _ 인창고 2학년 이지윤


덴마크 수업은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의 상호작용이 활발했 다. 수업 진행 절차는 우리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안에는 절제된 약속이 몸에 배어 있었다.


도입부에 그날의 수업에 대해 교사가 설명을 한다. 아이들에게 기본적인 자료와 참고 자료는 이미 제공되어 있다. 각자 노트북을 이용하니 검색도 자유롭다. 자료에 대한 해석은 제한이 없다. 교사는 질문을 통해 학생들이 마음껏 상상할 수 있도록 돕는다. 물론 이 질문은 간단하다. 한 질문에 하나의 과제를 담았으니 아이들은 그 질문에 집중한다.


교사가 설명을 하거나 질문하는 사이 학생 들은 손을 든다. 그냥 앉은 자리에서 함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교사는 모든 아이들이 고루 의견을 말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다. 어떤 의견이라도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조금 과장이 섞인 추임새도 넣는다.


그렇게 개인 의견을 들은 후에는 반드시 모둠별로 이야기하도록 한다. 아이들은 교사가 던진 질문 범위 안에서 서로의 의견을 나눈다. 그렇게 나눈 후 다시 또 교사는 학생들의 발표를 유도한다. 이런 과정이 반복된다. 교사들은 질문을 통해 수업을 단계적으로 이끌어간다. 처음과 마무리까지 엉성한 것 같지만 잘 짜인 드라마다. 마지막에 교사는 수업 의도를 확인하고 마무 리를 한다. 마무리에는 이번 시간의 학습 개념 확인과 다음 수업 안내가 따른다.


우리 학생들이 가장 부러워했던 것은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서로 존중하는 분위기였다. 무엇보다도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분위기는 정말 배우고 싶단다.



우리처럼 모든 교실이 똑같은 책상에 칠판을 바라보는 모습이 아니다. 자유로워 보이지만 어떤 규칙이 있었다.


이미 있는 시설을 다 바꿀 수 없다면 학교 상황에 맞게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학교는 건물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사람이다.



공간_ 학교는 ‘건물’이 아닌, ‘사람’이다


류슨스틴 고등학교는 유럽의 대부분 학교 처럼 건물 위주의 학교다. 과거 공장지대라 우중충한 건물이 그대로 있는 마을 여기저기에 학교 건물이 있고, 그 안에 수많은 학생들이 각자의 일정에 따라 움직인다. 교사들은 수업을 하기 위해 자전거로 이동 하기도 한다. 우리가 보기에는 무언가 비효율적이고, 낡고, 좁고, 답답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별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고교학점제 시행을 앞둔 우리가 공간 활용에 대해 생각해야 할부분이 보였다.


우선 쉬는 시간에 대기할 수 있는 ‘White space’라 할 공간이 여러 군데 있다. 운동장이 없고 건물 위주인 학교에서 선택 과목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학교 특성상 필요해 마련한 공간으로 보인다. 우리가 방문한 기간 동안 사용했던 공간 중 하나를 중심으로 활용 방법을 살펴보자.


넓은 공간 여기저기에는 사용처를 알 수 없는 검은 상자와 그보다는 조금 작은 상자가 놓여 있다. 공간 한쪽에는 커다란 종 모양의 원통을 세 개 매달았다. 겉면에는 질문이 적혀 있었다. 대표적인 것 하나. “What she means when she says ‘no’?” 이런 질문을 우리나라 학교에서 본 적이 있던가? 속은 어떨까. 호기심이 발동했다. 안을 들여다보니 각 나라에서 거부할 때의 표현이 적혀 있다. 한국에서는 ‘A-nim-ni-da’라고 한단다.


여기저기에 무심한 듯 쌓아놓은 상자, 가벼운 의자도 있다. 가장 궁금했던 것이 검은 상자. 무거워 보인다. 검은 상자의 비밀은 수학 시간에 풀렸다. 검은 상자 한 면에는 칠판이 붙어 있었다. 아이들은 모둠별로 그 검은 상자를 옮겼다. 필요에 따라 의자를 놓거나 구석에 있는 작은 상자를 옮기니 순식간에 모둠별 수업 장소가 생긴다. 다시 대기 시간에는 학생들이 쉬는 공간이 된다. 관리하는 사람도 없어 보이지만 음료수대와 전자레인지도 있어 학생들은 각자 준비한 간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실내체육관과 수영장은 인근 호텔을 이용하여 수업을 한단다. 마을 전체의 시설을 잘 활용한다. 매년 학교가 공사를 했던 기억이 있는 우리로서는 기존의 시설을 알뜰하고 유연하게 활용한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는 건물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리 학생들은 우리나라의 수업 변화가 어설프다고 했다.


“분명 수업 모습도 변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는 좀 어설퍼 보여요. 남의 것을 마구 모방해 따라하다 보니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어설픈 수업이 되는 거지요.”


교육을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왜곡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수업 시간이 학생과 상호작용을 통해 학생들이 배우는 시간이 되어야 하는데 형식에만 머물러 있다.


학생의 눈에 비친 우리의 교육 현실이 이럴진대 학교는 무엇을 해야 할까. 학생 활동이 강조되는 수업을 하다 보니 교실에는 모둠 활동이 많다. 그런데 덴마크 수업을본 학생들은 날카롭게 문제점을 말한다.


모둠 활동은 서로 대화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인데, 제공되는 활동지는 개인적으로 답을 쓸 수 있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굳이 모둠 활동을 할 필요가 없다. 공부 잘하는 아이는 얼른 활동지에 답을 적어버리고 만다. 반면에 그렇지 않은 아이는 혼자서 어렵게 문제를 해결한다. 분명 자리 배치 형식은 모둠인데 활동은 각자 한다. 서로 생각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단다. 생각을 나누는 데는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가 아니라 ‘자기 생각’이 있으면 된다고 말한다.


이래저래 덴마크 고등학교에서 많은 것을 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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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덕년 교장
  • COLUMN 특별기고 (2020년 03월 18일 94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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