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교 시간에 맞춰 학교에 갔다가 아들을 만났다. 함께 있는 베트남 친구가 명랑하고 또렷하게 “안녕하세요?”라며 한국말로 인사하며 웃는다. 지난 겨울방학 한국에서 한식과 스키를 즐기고 왔다고. 딸과 같은 고등학생들의 교내 행사 ‘Idol Show’에서는 한국 가수의 노래나 댄스를 선보이는 무대가 늘 인기다.
실제 BTS(방탄소년단) 노래의 누적 재생 횟수는 베트남이 한국보다 앞서있다. 내 나라의 10대 문화를 이곳의 10대들이 실시간으로 즐기는 모습은, 여러 생각이 들게 한다.
유튜브에서 인스타까지 뉴미디어 ‘열풍’
Hari Won(하리원)이라는 연예인이 있다. 베트남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한국 국적을 가진 베트남의 스타다. 거리 옥외 광고판에서 여러 번 얼굴을 볼 정도로 절대적인 인기를 누리는데 한국어와 베트남어 모두 유창하게 하고, 한국에서 아이돌로 활동했던 이력이 호감 요인 중 하나로 보인다.
방송 활동만으로 바쁠 것 같은 스타인데, 유튜브에서 개인 방송 채널을 운영한다. 이유가 있다. 베트남 사람들이 유튜브를 매우 즐기기 때문. 실제 베트남은 유튜브 진출 1년 만인 2016년, 세계 10대 시장 가운데 하나로 이름을 올렸을 정도다. 젊은 층 사이에서 매우 빠르게 확산되고 있어 하리원 같은 유명 연예인도 시장에 뛰어든 것.
특히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개인 방송의 인기가 매우 높은데, 토 응우웬의 채널은 구독자수만 597만 명에 달한다.
그 외 10대들은 게임이나 요리, 미용 콘텐츠를 선호하는데, 특히 뷰티 유튜브 채널은 한국 화장품이나 한국 연예인의 메이크업을 많이 다룬다.
페이스북 또한 베트남 10~20대의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다. 이용자 수만 6천400만 명에 이르다 보니, 청소년들은 페이스북 메신저로 대화를 나누고, 페이지에서 정보를 공유한다. 뉴미디어의 천국인 셈. 두 아이도 중학생이 되고선 친구들과 스냅챗, 인스타그램으로 열심히 소통한다.
10여 년 전과 확연히 다른 분위기다. 당시에는 정부가 페이스북 접속을 금지, 우회 프로그램을 통해야 접속할 수 있었다. 유튜브도 2016년에 공식 진출했으니, 인터넷에 기반한 뉴미디어가 매우 빠르게 베트남의 10~20대에 확산된 셈이다. 실제 많은 상점이나 식당 등이 SNS로 홍보나 상품 판매를 하는데 특히 10대의 반응이 빠르다. 얼마 전 봄방학 때 딸아이가 가고 싶다는 문구점에 함께 갔는데, 이 역시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을 통해 접한 곳이었다.
유행에 민감해지는 베트남의 10대들
모바일 기반 매체를 많이 이용하면서, 베트남의 10대는 최신 휴대폰에 대한 관심도 매우 높다. 아이폰이나 갤럭시의 신상품 정보는 아이들이 더 잘 꿰고 있을 정도. 휴대폰만이 아니다. 다양한 상품 정보가 빠르게 유통되면서, 아이들은 유행에 민감해졌고, 현지 마켓의 분위기도 바뀌었다. 유명 브랜드가 가득한 대형 쇼핑몰들이 시내 중심가에 세워지기 시작한 것. 볼링장과 실내놀이터, 극장, 식당들까지 입점한 대형 백화점과 쇼핑센터가 늘었다. 우리 아이들을 비롯 청소년들은 친구와 휴식할 때 자주 찾는다.
재밌는 점은 이 같은 모바일 서비스, 소비 문화에 한국의 비중이 높다는 것이다. 대중문화의 경우 연예인은 물론, 한국 방송 프로그램의 인기가 매우 높다. 예능 프로그램인 <런닝맨>은 인기에 힘입어 베트남판으로 제작돼 얼마전부터 방영되고 있으며, 화제의 중심에 있다. 또 CGV는 이곳 극장 시장에 진출, 주요 도시에 영화관과 쇼핑몰을 결합한 멀티플렉스 문화를 보급하고 있다. 한국 영화를 개봉하며 한국 문화를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기존의 한류가 뉴미디어와 만나 더 인기를 끈다는 느낌이다.
11월 20일은 베트남의 스승의 날이다. 둘째 아이의 학교에서는 몇 년 전부터 학부모들이 스승의 날 아침, 각국의 음식을 즐길 수 있는 행사를 준비한다. 이때 다들 한국 음식을 매우 좋아하고, 특히 베트남 선생님들 사이에서는 김치나 불고기, 김밥이 매우 인기가 많아 나를 놀라게 한다. 한국의 노래나 드라마뿐 아니라 음식과 문화까지 뜨거운 관심과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을 실감하기 때문. 여기에 베트남 축구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박항서 감독에 대한 호감까지 더해져 요즘 한국의 인기는 여느 때보다도 뜨겁다. 공산국가라는 사실을 가끔 잊어버릴 만큼,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변하고 발전하는 이 나라에서 젊은이들의 관심과 그 변화의 중심에 한류, 한국의 문화가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래서 베트남에서 한국인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장점이 많다. 한국 문화와 한국인에 대해 비교적 호의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어 ‘환영받는 손님’으로 살아가는 입장이라고 생각 한다. 그만큼 아이들이 이 나라에서 한국의 좋은 모습,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러운 이미지를 심어주며 자랐으면 좋겠다.
베트남의 국민 영웅이 된 박항서 감독의 광고 사진은 시내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호치민 대형 쇼핑센터에 있는 영화관. 베트남의 10대들은 한국식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
호치민의 서점 신간 소개 코너 한가운데에 진열된 한국의 아이돌그룹 BTS와 EXO 관련 책들.
베트남에서 한국 아이돌 그룹의 인기는 뜨겁다.
댓글 0
댓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