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주제 나는 왜 이 나라로 유학을 결심했나 |
차라리 미국에 갈 테야
“아, 성적이 또 이 모양이야!” 중학생이 된 뒤 성적표를 받아볼 때마다 한숨부터 나왔다. 지난번 시험도 못 봤는데 이번 시험은 더 못 봤다! 성적이 나쁘면 더 노력해서 성적을 올려야겠다는 생각부터 해야 하지만,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낮은 점수를 보니 마구 우울해지면서 공부할 의욕이 전혀 생기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도 유일하게 만점을 놓치지 않은 과목은 영어였다. 어렸을 때 잠깐 미국에서 거주한 경험이 있는데, 한국에 돌아온 뒤에도 수시로 영어책을 읽고 영어 방송이나 영어 노래를 들으면서 실력을 유지하고 키워놓은 덕분이었다. 중2 막바지 무렵, 여전히 오르지 않는 성적을 보며 힘겨워하다가 ‘다른 건 몰라도 영어는 잘할 자신이 있으니 차라리 미국에서 공부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는 막연한 생각으로 유학을 결심했고 부모님도 내 뜻을 존중해주셨다.
미국 고등학교에서 살아남기
처음에는 한국의 유학원을 통해 미국 동부의 한 가톨릭고등학교에 9학년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막상 입학해보니 한국과 중국에서 온 유학생이 굉장히 많았다. 학교에 유학생이 많을 경우 큰 단점이 있다.
향수병과 언어장벽으로 유학생들은 끼리끼리 어울리기 쉽고, 이런 과정에서 서로 모국어로 대화하다 보니 영어가 좀처럼 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은 외국 학생들이 한국인 유학생을 배척하는 분위기로 이어지기도 한다. 고민하던 나는 유학원을 통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학교를 알아본 끝에, 9학년을 마친 뒤 유학생이 단 한 명도 없는 텍사스의 사립고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새로 옮긴 학교에서는 미국인 친구들을 사귀기도 훨씬 수월했다.
기왕 미국까지 왔으니 학비가 아까워서라도 잘해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을 먹고 공부를 시작하니 성적은 놀라운 속도로 수직상승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프로젝트와 숙제, 에세이 등으로 차곡차곡 점수를 쌓아가는 미국 학교의 시스템이 내게는 훨씬 잘 맞았다. 혹시라도 남들에게 도피유학 온 아이라고 무시를 당할까 봐 친구도 적극적으로 사귀고 공부도 새벽 늦게까지 했다.
성적이 한 번 잘 나오니, 전에는 없던 공부 욕심도 샘솟기 시작했다. 더 열심히 노력해서 명문대에 가고 싶다는 생각에 미국 대학 입시 시험인 SAT도 미리 준비했다. 캠핑 동아리나 연극부, 방과 후 과외 활동 등 다양한 동아리 활동에도 매진하면서 교내는 물론 전국대회에 나가 꾸준히 수상 실적을 쌓으며 10학년부터 대학 원서를 준비했다. 미국 고등학교에서는 내신과 대입 시험점수도 중요하지만, 글쓰기 실력과 동아리 활동 경력, 수상 기록, 그리고 선생님의 추천서가 탄탄하면서도 방향성 있게 갖춰져야만 대학 합격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 입시를 바라보고 정신없이 뛰다 보니, 졸업반인 12학년이 될 시점엔 여러 동아리에서 회장이나 부회장 역할을 맡고, 학교 뮤지컬 공연에서 주인공 역할을 맡아 열연하는 등 값진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꿈에 그리던 뉴욕대 미디어학과 학생이 되다
뉴욕대에 마음을 빼앗긴 것은 10학년 때 학교 수학여행으로 뉴욕에 갔을 때다. 뉴욕의 화려함에 넋을 잃은 채 뉴욕대 근처를 지나가는데, 그 캠퍼스에서 멋진 옷을 입고 분주히 돌아다니는 뉴욕대 학생들이 그렇게 근사해 보일 수 없었다. 여행 첫날 무슨 일이 있어도 무조건 저 학교에 다녀야겠다고 다짐했고, 남은 고등학교 생활 내내 뉴욕대만을 바라보고 공부했다.
처음 원서를 준비할 때는 어떤 학과를 선택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하고 싶은 것은 참 많은데 가서 수업을 들어보기 전엔 결정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고민이 많던 차에, 뉴욕대의 개성이 잘 드러나는 전공인 ‘미디어, 문화, 그리고 커뮤니케이션(Media, Culture, and Communication)’ 학과를 알게 됐다. 디지털 콘텐츠 제작, 마케팅, 저널리즘 등에 관심 있는 학생들을 위한 학과로 미디어 이론을 비롯해 정치학 사회학 경영학 등 여러 분야의 교수들이 다양한 커리큘럼을 가르친다.
나는 전부터 이런 분야의 학문과 진로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뉴욕대에 이 학과가 있다는 정보를 얻고는 ‘유레카’를 외쳤다.
결국 뉴욕대 미디어학과에 Early Decision(미국의 수시)을 통해 1지망으로 지원했고 합격했다. 현재는 미디어학과 2학년 막바지에 있으며, 내 선택에 대해 후회한 적은 아직 없다.
한국의 교육 제도에 답답함을 느끼고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막연함으로 미국 유학을 결심한 철없는 중학생의 선택이, 이렇게 보람 있는 유학생활로 이어지게 된 건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지면을 통해 독자 여러분에게 더 많은 미국 유학생활의 이모저모를 전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1. 뉴욕대 캠퍼스는 뉴욕 맨해튼의 한복판에 있기 때문에 도시의 거리를 걷다 보면 학교 건물들을 볼 수 있다.
2. 미국 고등학교의 졸업 기념 무도회인 프롬(Prom)은 미국 학생들의 로망이다.
3.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길어진 방학 기간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 학교 친구들과 미국 국내 여행을 자주 다닌다. 1학년 봄방학 때는 올랜도의 월트 디즈니월드 리조트에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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