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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뉴스

870호

WEEKLY CLOSING

우리는 왜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는가

이집트 문명을 일으킨 민족은 원래 아프리카 북부 지역에서 수렵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그 지역에 있던 강우전선이 유럽으로 옮겨가면서 빠르게 사막으로 변해갔다고 한다. 이들은 세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첫째, 그곳에 남아 기존의 수렵 생활을 한다. 둘째, 그곳에서 수렵 생활 대신 농경이나 유목 생활로 바꾼다. 셋째, 거주 지역과 생활 방식을 모두 바꾼다. 결국 ‘선택’에 따라 운명이 결정됐다. 그 자리에 남아 조상들의 방식대로 수렵 생활을 했던 부족은 오래가지 못하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생활 방식을 바꾼 부족은 아프리카 초원에서 유목민이 됐다. 독사가 우글거리는 나일강변 밀림 지역으로 옮겨가 목축과 농경을 선택한 민족은 찬란한 이집트 문명과 수메르 문명을 일궜다.

1학기가 끝났다. 기말고사를 앞두고 몇몇 학교에서 시험 부정이 발생했다. 서울에서, 광주에서, 그리고 부산에서…. 이러한 부정 사례가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 인터넷에는 기다렸다는 듯이 학생부 종합 전형을 폐지해야 한다는 댓글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물론 문제점이 발생하면 원인을 진단한 후, 적절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대개 그 문제점의 본질에 주목하기보다 현상적 측면에만 매몰되곤 한다. 혹은 특정한 의도로 사건을 왜곡하는 경우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우리는 이를 경계해야 한다. 즉, 무엇이 문제인지 제대로 파악해야 적절한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야만 올바른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다.
내신 시험에서 부정 사례가 적발됐으니 종합 전형을 폐지하자는 주장은 곧 과거로 회귀하자는 것이다. 이번 부정 사건의 본질도, 종합 전형의 취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주장이다. 만일 애초에 시험 문제가 이와 같았다면 어땠을까?



시험지를 유출해도 소용없었을 것이고, 아마 애초에 시험지를 유출하고자 마음먹지 않았을 것이다. 즉, 이번 사건을 통해 변해야 하는 것은 대입 제도가 아닌, 학교 교육이다.
우리는 매우 중요하고 담대한 결단을 해야 하는 세대적 변혁기에 들어섰다. 예측 불허의 4차 산업혁명기에 들어섰고, 인구 절벽과 극심한 교육 격차에 직면해 있다. 전에 해오던 익숙한 방식의 교육은 이런 세대적 변혁 앞에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휩쓸려갈 것이다.

기존의 명문고들이 여러 요인에 의해 평범한 학교가 되기도 하고, 신설 학교들이 명문고의 반열에 올라서기도 한다. 학교 구성원들이 남다른 혜안을 바탕으로 좋은 학교를 만들고, 좋은 교육을 실천하려는 처절한 노력을 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교사들은 개인적인 시간까지 할애하며 남들이 하지 않는 일, 남들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려고 했다. 학생들에게 과목 선택권을 넘겨주었고, 선택할 만한 과목들을 만들어냈다. 결국 명문고가 되기 위해서는 기존의 방식을 답습하는 것에서 벗어나 보다 새로운 시도를 할 필요가 있다.

최근 사회 혁신과 변화를 꿈꾸는 ‘체인지 메이커’들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비영리법인 ‘루트 임팩트’에 대한 기사를 접했다. 참 신선했다. 우주여행, 비행기에 버금가는 속도의 초고속 지하 터널, 대용량 에너지 저장소 등 터무니없는 상상으로 여길 법한 일들을 하나씩 현실화시키고 있는 ‘문제적 사업가’ 일론 머스크의 교육 실험에 대한 보도도 있었다. 이 학교의 수업은 전통적인 방식을 벗어난다. 학년을 정해두지 않고 자신들이 정한 주제에 대해 팀을 이뤄 공부한다. 숙제는 거의 없고 성적도 매기지 않는다. 교과 과정도 매년 바뀌고, 그중 절반은 학생들 스스로 결정한다. 우주 탐사, 환경 정책 등 특정 주제를 정해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식이다.

영국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의 연구>에서 인류의 역사를 ‘도전과 응전(challenge and response)의 과정’으로 규정했다. 외부의 도전에 효과적으로 응전했던 민족이나 문명은 살아남았지만, 그렇지 못한 문명은 소멸했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본질적인 물음을 던져야 한다. ‘전문대학과 폴리텍 대학을 합쳐서 고용노동부에서 관리하는 것은 어떨까? 농업고는 농림부에서, 특성화고는 산업자원부에서 관리하면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더 이상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변화를 거부할 필요도 없다. 다가오는 미래는 우리에게 분명히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Fast Follower’에 머무르지 말고 ‘First Mover’가 되어야 한다고



주석훈 교장
서울 미림여자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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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석훈 교장 (서울 미림여자고등학교)
  • WEEKLY CLOSING (2018년 08월 08일 8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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