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스페인을 찾은 이유, 행복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내 나라 밖, 낯선 환경에서 이방인으로 사는 것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특히 스페인과 한국의 교육 문화는 너무도 다르다. 상급 학교 진학 구조 등 교육 정보를 구하기 어렵다. 아이들은 교과 공부와 함께 ‘언어’의 벽에 매일 부딪히고, 현지 학생과 경쟁해야 한다. 여유와 축제의 나라 ‘스페인’에서도 ‘외국인’ 학생과 학부모가 살아남으려면 몇 배 더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
교육 정보, 이보다 더 부족할 수 없다
스페인은 교육 정보가 부족하다. 특히 학습이나 진학 관련 정보를 구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외국인들에겐 입학부터 난관이다. 예를 들어 스페인 발렌시아의 입학 원서 접수 시기는 5월이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모든 학교의 원서를 이때 접수한다. 상급 학교로 진학하거나 9월 학기에 전학하려면 정해진 날짜에 원서를 접수해야 한다. 7월 중순 발표에 따라 진학 여부가 결정된다. 교육청이 정한 시스템이라, 2월에 전·입학을 희망하는 학생이 있어도 학교는 5월 전에는 접수를 받지 않는다. 이를 모르고 스페인 현지에만 도착하면 입학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해 준비 없이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는 경우를 여러 번 목격했다.
진학도 마찬가지. 간단한 원수 접수조차 외국인에겐 큰일이다. 우리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고 있는 초등학교 동창의 딸아이만 해도 그렇다. 9월에 고교에 진학하는데, 지금 다니는 학교는 중학교까지만 있어 고등학교를 찾느라 크게 고생했다. 나도 현지 고교 원서를 처음 써보니 어떤 부가서류를 제출해야 하는지, 이들 서류 접수처가 교육청인지 해당 학교인지 알 수 없었다. 학교 설명회나 안내서를 통해 원서 작성법만 알려주니, 외국인들은 스무고개 하듯 발품을 팔아 부족한 정보를 채워 넣을 수밖에 없다.
학교 정보를 구하는 것은 더 어렵다. 아무리 친해도 친구들끼리 지망 학교나 입시 전략을 나누지는 않는다. 유치원부터 중·고교 과정까지 한 학교에서 다니는 반사립·사립학교의 선호도가 높은데, 이들 학교는 1년에 결원(4~6명 정도)만 선발해 입학 경쟁률이 높기 때문. 한국처럼 인터넷이나 정기간행물을 통해 학교 정보를 구할 수도 없다. 역사가 길거나 평판이 좋은 학교를 부모가 발품을 팔아 찾고, 그에 맞춰 진학 계획을 세우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스페인에는 ‘유치원을 대학보다 신중하게 고른다’ ‘유치원 학부모들의 치맛바람이 가장 쎄다’는 말이 있다.
무슨 말인가 했지만, 지금은 납득이 간다.
중학교의 진로·진학 상담 심도 깊어
스페인은 중학교 단계에서 진로지도가 심도 있게 이뤄진다. 고등학교는 문과, 이과, 예술학교, 직업학교 등 네 가지로 구분되고, 전공에 따라 배우는 과목과 대입 시험 또한 달라진다. 직업까지 연결되는 ‘고교 선택’이라 학교에서 진로 상담이 활발하다. 중학교 4학년 (스페인은 초6-중4-고2 체계다) 2학기의 2~4월에 세 차례에 걸쳐 학교 진학 상담이 이뤄진다. 상담 교사가 중학교 4년간의 시험 성적과 과목별 자료를 토대로 학부모와 협의하는데, 대개 학교 지도에 따르는 편이다.
고교 선택 기준은 적성과 성적이다. 교육청은 성적이 10점 만점 중 5점 이상만 되면 진학이 문제 없다지만, 현실은 다르다. 전공마다 필수 과목이 있어 이를 이수하지 못하면 원서조차 쓸 수 없고, 학교마다 최저 학점이 달라 원하는 학교에 가려면 평균 8점 이상의 성적이 필요하다. 외국인은 이 같은 정보가 부족해 높은 성적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다만 현지 학생들은 부모의 의사가 아닌 자신이 원하는 진로와 직업을 최우선으로해, 고교와 대학 진학을 선택한다. 부모들도 아이들의 의사를 존중한다.
간혹 자녀의 성적이 좋지 않아 스페인 이민을 생각한다며 문의하는 사람들이 있다. 비단 스페인뿐만 아니라 자녀의 조기 유학을 고민하는 학부모들은 언어만 된다면, 한국보단 학교생활이나 대학 입학이 쉬울 것으로 예상한다. 정말 잘못된 생각이다. 수학과 영어는 어느 나라에서건 중요하고, 영미권 국가가 아니라면 다른 언어로 교과를 배워야 한다. 또 한국과 달리 유급제라 성적이 부족하면 졸업 자체가 어렵다. 스페인에서 유학 비자를 연장하려면 성적증명서를 내야하므로 유급이 반복되면 비자 발급을 거절당할 수도 있다.
스페인은 분명 여유로운 나라다. 자신의 삶을 축제처럼 즐긴다. 하지만 그 속에 어울려 살기 위해선 현지인보다 두세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 부모로서 ‘아이의 행복’과 ‘이방인으로서의 생존’의 균형을 어떻게 맞춰야 할지 끝없이 고민한다. 아이가 공부나 일의 노예가 되지 않기를 원하는 엄마의 마음을, 좀 더 높은 성적을 얻길 원하는 학부모의 욕심이 이기지 않도록 매일 다짐한다.
1. 스페인 고교 입학 원서. 선호도가 높은 사립이나 반사립학교는 고교 결원이 적어 입학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
2. 입학 원서를 접수하기 위해 교육청 앞에서 대기하는 학부모들. 자녀 유학을 고민하는 학부모 중 전입학이 가능한 시기가 따로 있다는 점을 몰라 허탕을 치고 돌아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3. 발렌시아 공립 대학 전경.
4. 학교 알림장. 교사가 상담하고 싶거나 자녀의 생활이나 학습에 의문이 있을 경우 메모해서 학부모에게 전달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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