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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칼럼

953호

ISSUE INTERVIEW | 한국도서관협회 남영준 회장

“선행하는 독서는 그만! 상상력 키우는 철없음을 허하라”

청소년의 일상에서 책은 아주 가까이에 있다. 의무적으로 책을 읽고 학교 독서 기록 시스템에 흔적을 남기는 것 외에 ‘한 학기 한 권 읽기’ 수업도 있고, 창의적 체험 활동이나 방과 후 시간에도 독서 활동이 이뤄진다. 국어가 아닌 교과 수행평가에서도 관련 도서를 활용하는 주제가 흔하다. 그러나 학생들에게 여전히 책은 돌아가고픈, 가까이하기엔 너무나 어려운 존재다.

올해 ‘청소년 책의 해’를 맞아 공공도서관과 학교도서관을 중심으로 청소년들에게 새로운 독서 문화를 전파하고 있는 한국도서관협회 남영준 회장을 만났다. 손꼽히는 독서 전문가인 남 회장에게 청소년 독서 문화의 현 주소와 ‘책 읽는 청소년’이 가득한 사회로 나아갈 방법을 물었다.


취재 정나래 기자 lena@naeil.com 사진 이의종




선행하는 독서는 그만!

상상력 키우는 철없음을 허하라

한국도서관협회 남영준 회장


남영준 회장

한국도서관협회 최초의 직선 선출 협회장. 일선 초·중·고교에 사서 교사배치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등 학교·청소년 독서 문화 확대에 앞장서 왔다. 현재 국립중앙도서관 국가정책정보협의회 위원장, 한국정보관리학회장 등도 역임하며 도서관·독서 정책과 더불어 정보 전문가로도 활약 중이다.



다양한 독서 장려 정책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왜 계속 책을 꺼릴까요?

‘하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세뇌’에 가깝게 독서의 장점을 듣고 결국 읽기를 강요받죠. 부모는 세계문학전집을 ‘읽으라’고 하고, 학교도 독서록을 ‘제출하라’고 합니다. 청소년의 독서량을 늘리고 습관을 잡아주려는 노력과 애정이, 역설적으로 거부감을 키운다고 생각합니다.
또 책과 가깝지 않은 학부모, 독서를 수업 혹은 입시를 위한 도구 중 하나로 여기는 학교가 학생에게 충분히 설명하지 않아 상황을 악화시키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SF 소재의 ‘웹툰’을 즐겨 보는 학생에게 그것보다 과학 도서를 읽으라고 권하는 사례는 흔합니다. ‘왜 안 되냐’고 반문하면 ‘만화는 한정된 지면에 그림과 짧은 대화로 구성돼 네 상상력을 제한할 것 같아. 얇은 SF 소설로 네 마음껏 상상해보면 어떻겠니?’라고 이해를 구해야 합니다. ‘그게 책이냐’ 혹은 ‘그냥 말 들어’라고 하면 학생은 납득하지 못하고, ‘책’과 ‘책을 읽으라고 한 사람’에 대해 거부감을 갖기 쉬워요. 공부처럼 당장 입시 당락이 갈리는 것도 아니니 싫‘ 은 독서’를 피할 테고요.

가정, 학교의 독서 교육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의미인가요?

이제는 ‘좋은 책’ ‘올바른 독서’의 개념을 되돌아봐야 할 시점입니다. 학부모와 학교는 학생들이 읽어야 할 책을 너무 좁게 바라봅니다. 독서도 그 자체의 즐거움보다 학습적인 관점이 짙게 배어 있어요. 청소년에게 필요한 독서가 아닌 즐거운 독서를 체감하게 해야 합니다. 그 시작은 자유를 주는 데 있습니다. 학생이 책을 선택하게 하세요. 서점이나 도서관, 혹은 교내 도서실에서 여러 권을 일단 가져오게 하세요. ‘한 권’만 가져오라고 하면 학생들은 진짜 원하는 책보다 학습된 좋은 책을 가져올 가능성이 크니 피하고요.
이때 책의 내용을 한 번만 걸러주세요. 우리 청소년·어린이들은 수학을 ‘선행학습’하듯, 책도 너무 앞서 읽고 있거든요. 학생의 나이, 감정, 경험에 걸맞은지 살펴주세요. 예를 들어 제3세계의 기아 문제를 다룬 르포 책 등은 어른을 위한 ‘추천도서’ 라고 생각합니다. ‘힘이 지배하는 세계 질서’ 나 ‘부패한 정부’ 등 부조리한 사회를 알려주고 ‘불합리’ ‘절망’ 등을 말하는 책인데, 비판적 사고력을 키워주기 위함이라고 하더라도 너무 일찍 읽히는 것 같습니다. 안 그래도 책을 멀게 느끼는 책인데, 무거운 주제와 아픈 내용이라면 학생들이 가까이 하고 싶을까요?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라는 염세적 이야기보다는 ‘함께 기적을 만드는 사회’를, ‘부패하고 무능한 지도자’ 보다 ‘슬기롭게 평화와 부강을 구축한 성군’을 먼저 알게 해야 합니다. 희망과 기적, 사랑이 있는 책을 충분히 보게 해주세요.
특히 사고력을 키워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사건·지식 중심의 책을 너무 일찍 읽도록 하지 말고, 상상할 시간을 충분히 주세요. 흔히들 철없다고들 하죠? 철없이 마음껏 상상하게 내버려두세요. 어차피 질풍노도의 사춘기와 입시라는 현실은 누구나 맞이합니다. 하지만 책으로 한껏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고 웃고 즐긴 아이들은 해피엔딩을 기대하며 복잡한 또래 감정을 다룬 책을 접하면서 위로받고, 축적한 읽기 역량으로 교과나 진로와 관련한 책을 통해 지식을 확장해나갈 수 있을 겁니다.

너무 쉬운 책만 읽지 않을까요?

학생의 성장에 따라 적절한 수준의 책을 조절해야죠. 도움 받을 전문가를 주위에서 쉽게 찾을 수 있어요. 학교 사서 교사나 지역 도서관의 사서들입니다. 책을 비롯해 도서관이 보유한 각종 정보의 전문가들이니, 취향에 맞는 책부터 숙제할 때 필요한 자료까지 다양하고 적절한 정보를 찾아줄 겁니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지금 시대이기에 더 주목할 부분입니다.
인터넷은 정보 접근성이 뛰어나지만, 잘못된 정보들도 넘쳐나죠. 제가 대학 강의 자료를 만들려고 구글 북스에서 비서학을 검색해보니, 400여 건의 책 중 80% 이상이 성인 서적이었어요. 전자도서관의 역할과 쓰임을 고민하게 됐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걸러진 정보를 얻길 권합니다.

스마트폰 덕에 ‘읽는 행위’는 늘었다는 분석도 많습니다.

현상은 맞습니다만, 기사나 게시글, 웹소설을 독서와 같은 ‘읽기’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책은 제한된 분량에 완결된 이야기를 담습니다. 단어 하나, 문장의 위치가 다 의미가 있죠. 작가가 취재해 쓰고 편집자들이 붙어 사실 여부를 검증한 ‘현실’을 반영해 다듬은 결과물이기도 하죠. 내용을 읽고 곱씹다 보면 어느새 책 속 인물이 머릿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사건이 이어집니다. 그 안에서 스스로 즐거움이나 의미를 찾아내고요.
반면 클릭을 유도하기 위한 자극적인 제목이 다인 인터넷 기사, 사실 검증은커녕 출처도 모르는 게시글, 비현실적 세계에서 복수를 하거나 돈을 버는 등 세속적인 성공을 위해 달려나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짧고 단순한 문장으로 그린 웹소설은 곱씹을 거리가 거의 없습니다. 현실의 일부를 지나치게 왜곡하고, 혹은 허구 세계에서 순간의 자극만 제공할 뿐이죠.
이런 말초적인 자극은 청소년·아동에게 치명적입니다. 특히 주체가 ‘나’로 일관돼 ‘상대’의 감정이나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텍스트나 영상은 매우 위험합니다. 남녀 간의 사랑과 성적 욕망은 전혀 다른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대상을 쾌락의 도구로 설명하는 텍스트와 영상이 대표적입니다. 이를 보고 어린 학생들은 거름망 없이 사실로 받아들여요. 최근 사회를 충격에 빠트린 ‘N번방 사건’의 가해자들도 이런 성장 과정을 거쳤으리라고 예상해요. 건전한 유희를 즐기고, 적절한 정보를 얻으며, 공동체 안에서 성장할 수 있게 사회가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중심에 책과 도서관이 있어야 하고요.

앞으로 도서관·사서는 어떤 역할을 할까요?

사회가 발전할수록 문화와 지식에 대한 욕구가 커지기 때문에 도서관은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도서관·사서의 역할이 더 강조돼야 하고, 그렇게 변해야 합니다. 도서관은 이미 책을 무료로 빌리거나 공부할 열람실이 있는 곳을 넘어 다양한 행사·강연은 물론 휴식공간까지 제공하는 지역 내 문화 구심점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이에 더해 지역 커뮤니티 정보 센터로 도서관의 폭을 넓혀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논문에 필요한 자료를 찾아주는 것처럼, 살아가면서 필요한 정보들을 제공해주는 거죠. 현재 저소득층이 마스크를 지원받을 수 있는 방법, 성폭력 피해자가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곳 등 당사자에겐 꼭 필요한 정보를 편하게 물어볼 곳이 마땅치 않아요.
이런 일을 정보 분류·검증의 전문가인 사서와 그들이 모인 도서관에서 하면 좋겠습니다. ‘정보 안내 서비스 제공’이라는 새로운 역할을 부여하는 셈이죠.
이런 일이 가능한 건 사서가 ‘정보 전문가’이기 때문이에요. 청소년들에게 강조하고 싶은 부분입니다. 사서의 일과 사서가 되기 위해 배우는 문헌정보학에 다소 오해가 있는 것 같아서요. 문헌정보학은 정보를 통제·처리해 그 가치를 극대화하는 이론과 기술을 배우는 학문입니다. 빅데이터 시대에 가장 필요한 역량이죠. 실제 대학에서 빅데이터를 생산, 분석할 수 있는 분석 도구를 가르치고, 졸업생들은 도서관은 물론 금융 분야에서도 활약하고 있습니다. 데이터와 정보, 지식들을 총체적으로 다루는 만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가장 ‘힙’한 전공이고, 취업에도 유리합니다. 문헌정보학을 청소년들이 바로 알고, 진로로도 눈여겨보길 권합니다.

학부모들에게 전할 말이 있다면요?

책 읽는 아이를 원한다면 ‘함께’ 읽길 바랍니다. 특히 고3과 중3 학부모에게 ‘강추’ 합니다. 독서를 매개체로 수다와 공감을 나눈 부모가 편안해지면, 예민한 수험생 자녀에게도 안정감이 전해집니다. 상상해보세요. 엄마와 아빠가 좋은 책을 함께 읽고 그 책으로 대화를 이어가는 모습을요. 그런 부모를 보는 자녀도 책을 집을 겁니다. 첫 책을 고르기 어렵다면 마저리 윌리엄스의 <사랑받는 날에는 진짜가 되는 거야(The Velveteen Rabbit)>을 추천해드립니다. 10분 안팎이면 읽을 수 있는 짧은 분량이지만, 그 울림이 묵직하죠.
참, 가정 독서에서 명심할 것이 있습니다. 성과를 내야 한다는 사명감은 책 읽기를 더 힘들게 합니다. 의무감이나 남을 보여 주기 위한 독서는 안 하는 게 낫습니다. 부모, 자녀 모두요. 좀 더 가볍고, 경쾌한 마음으로 책을 마주하길 바랍니다.

‘좋은 책’ ‘올바른 독서’의 개념을

되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학부모와 학교는

학생들이 읽어야 할 책을 너무 좁게 바라본다.

필요한 독서가 아닌 즐거운 독서를

체감하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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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나래 기자 lena@naeil.com
  • ISSUE INTERVIEW (2020년 05월 9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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