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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칼럼

929호

COLUMN 리포터 다이어리

수능 D-10 도시락 싸기 연습

● 딸이 고3이 되면서부터 계속 고민해오던 일이 지난 10월 드디어 해결됐다. 마지막 모의고사가 있던 날, ‘수능 도시락’으로 뭘 쌀 건지 딸과 극적으로 합의를 본 것. 그동안에도 모의고사를 볼 땐 급식 대신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곤 했다. 그런데 그때그때마다 딸이 싸달라는 주먹밥과 컵라면 혹은 냉장고를 털어서 급조한 메뉴였기 때문에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원래 음식 솜씨도 별로 좋지 않은 데다가 정성을 가득 담았다고 보기도 어려운 도시락을 들려 보낼 때마다 ‘이러고도 내가 고3 엄마인가’라는 자괴감이 밀려왔다. 그렇다고 내 마음대로 메뉴를 정할 수도 없었다. 탄수화물과 단백질이 조화를 이루고,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한 식단을 궁리해서 디밀어봤지만 편식이 심한 딸은 매번 고개를 가로저었다.



● ● 딸의 친구들은 모의고사를 보는 날 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일주일에 두어 번 이상 ‘수능 도시락’을 싸와서 급식 대신 먹는다고 했다. 입시를 치러본 지인도 아이의 몸이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시험 당일과 같은 메뉴를 시험 전부터 꾸준히 먹이라고 귀띔해줬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심란해서 나도 빨리 딸에게 그렇게 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내 일이 바쁘기도 했고, 딸도 어떤 메뉴가 좋다고 딱 말을 안 해서 어영부영하다 도시락 싸기를 연습할 기회를 모두 놓치고 말았다. 마지막 모의고사 전날, 그간 소홀했던 것까지 한방에 만회할 만한 맛깔난 도시락을 선보이리라 벼르고 있었다. 그런데 딸은 하루 종일 배가 아팠다면서 그냥 죽이나 싸라고 했다. 고3이 되면서 스트레스성 배앓이가 잦았는데 시험을 앞두고 어김없이 또 탈이 난 모양이다. 딸과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그럼 그 날도 그냥 죽으로 싸면 되겠네!”라고 외쳤다. 그렇게 해서 긴 고민이 무색하게 ‘수능 도시락’은 평소 배가 아플 때마다 집에서 먹던 흔한 식단으로 결정됐다.



● ● ● 죽 중에서도 딸이 제일 좋아하는 전복내장죽을 메인으로 하고, 반찬으로 달걀말이, 떡갈비 스테이크, 김치볶음을 곁들이기로 했다. 전복죽은 그나마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메뉴 중 하나라서 다행이다. 전복은 먼저 살의 거뭇한 부분이 하얗게 될 때까지 솔로 박박 문질러서 깨끗하게 세척한다. 그 뒤 숟가락을 껍질과 살 사이로 밀어넣으면서 지긋이 힘을 주어 위로 떠내듯이 살을 분리하되 내장이 터지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그 다음 먹기 좋은 크기로 썬 전복 살, 내장, 불린 쌀을 참기름 두른 냄비에 넣고 달달 볶는다. 이때 내장이 익기 전에 재빠르게 터트려서 쌀에 초록물이 배어들게 해 끓여야 제대로된 맛이 난다. 이참에 솜씨를 발휘해서 떡갈비도 홈 메이드로 한 번 해보려고 했는데 딸이 극구 만류한다. 익숙한 것이어야 하니 그냥 원래대로 홈쇼핑에서 시키란다. “나 요리 못하는 거 인정! 대신 전복죽만큼은 끝내주게 끓여주겠어!”



● ● ● ● 시간이 쏜살 같다는 말이 실감나는 요즘이다. 그 어떤 격려도 부담이 될까 조심스러워 말을 아낀다. 그저 깊은 눈맞춤과 고갯짓으로 마음을 전할 뿐. ‘그까짓 시험에 쫄지 마! 결과와 상관없이 너의 내일은 찬란하게 빛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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