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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호

COLUMN 리포터 다이어리

자기소개서를 쓰는 괴로움

자기소개서를 쓰는 괴로움

손희승 리포터 sonti1970@naeil.com


재작년 8월 초, 딸은 고3 담임 선생님과의 상담을 끝내고 수시 지원 대학이 어느 정도 정해지고 난 뒤 자기소개서 쓰기에 들어갔다. 3년 내내 내신 시험과 수행평가로 머리에 집어넣는 공부를 하다가 8월 한 달 동안 자신의 이야기를 머리에서 꺼내 1천 자, 1천500자, 1천 자로 글쓰기를 해야 하니, 두뇌 전환이 쉽게 될 리 있겠는가. 학생부를 펼쳐놓고 ‘배우고 느낀점이 있는 경험이나 활동’을 같이 찾아보자고 하자 딸은 가방을 주섬주섬 쌌다. 차라리 수능 공부를 하겠다며 독서실로 도망갔다.


글은 마감이 있어야 써진다. 8월 여름방학 동안 담임 선생님은 자기소개서 써야 하는 학생들을 각각 세 번 이상 봐주셨다. 딸은 담임 선생님과 약속한 바로 전날 밤이 되면 뭐라도 썼다. 그리고 다음날 처참하게 깨지고 돌아왔다. 한 번에 통과된 같은 반 친구도 있는데 자기는 왜 이 모양이냐고 했다. 그래도 선생님과 약속을 잡은 덕분에 자기소개서는 조금씩 채워졌다. 딸이 지원하려는 학과에 합격한 선배가 와서 자기소개서를 봐주기도 했다. 선배는 자신이 제출했던 자기소개서도 보여주고 조언도 해주고 하소연도 들어주었다며 고마워했다. 쓰고 고치고 또 쓰고 또 고치려면 그렇게 누군가 다른 시각으로 조언해줘야 했다. 본인은 그 순간 최선을 다해 머리를 짜내 쓰기 때문에 컴퓨터 화면만 쳐다보고 있으면 고칠 부분이 보이지 않는다. 자기소개서에 대해 잘 알고 있을 법한 분을 찾아 대교협과 서울시교육청 교육연구정보원에서 주최하는 공교육 일대일 상담도 각각 신청했다. 고등학교 선생님의 평가를 듣고 와서 쓱 읽어봤을 때 어떤 부분이 눈에 띄는지, 어떤 부분이 부족해 보이는지 등을 딸에게 전해주었다. 딸은 그렇게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이틀에 한 번, 사흘에 한 번씩 자기소개서를 고쳐나가면서 면접 준비와 수능 공부도 함께했다.


수능 공부를 위해 자기소개서를 일찍 끝낸다는 것은 적어도 딸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9월 중순, 수시 원서 제출 마지막 날까지 고쳤다. 그렇게 한 달 남짓 고생한 덕분인지 9월쯤 되자 무엇을 쓸지 어떻게 표현할지에 대해 풍부한 아이디어와 표현력이 스스로 뿜어져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비행기를 보는 것 같았다. 오랫동안 정비하고 훈련하고 난 후 활주로에서 달리기 시작하니 점점 속도가 붙고 그러다가 자기 힘으로 날아오르는 모양이 그러했다. 최종 제출한 자기소개서를 보며 딸은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했다. 껍질을 깨고 다른 세상으로 나온 듯한 기분이라고 했다. 지금 자기소개서 때문에 괴로워하는 많은 고3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다. 그 고통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나만 이렇게 힘들고 어렵게 쓰고 있나 절망스러운 그 심정 이해한다고. 그렇게 한 땀 한 땀 고쳐나가다 보면 언젠가 끝날 것이고 그때가 되면 스스로가 대견스러울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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