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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칼럼

910호

EDUCATION 학부모 해외통신원

실패 없는 네덜란드 학생의 꿈 찾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여행 중 운이 좋다면 생소한 장면을 목격할 수 있다. 일명 ‘자전거 낚시’. 암스테르담 운하에 버려진 도난 자전거를 크레인으로 건져내는데, 이는 자전거 낚시꾼의 일이다. 자전거의 나라로 알려진 네덜란드에만 있는 직업이 아닐까 싶다. 내가 만난 대부분의 네덜란드인은 자신들의 일을 매우 즐겁게 하면서 살아간다. 다양한 직업군에 속한 이들을 만났지만, 겉으로는 삶의 질이 별반 차이나 보이지 않는다. 사회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네덜란드인의 실용주의적 사고가 직업관에도 영향을 미친 듯하다.

진로 따라 중·고교 과정도 달라져
네덜란드에서는 중·고교 진학과 동시에 각자의 진로가 어느 정도 결정된다. 대학 진학을 원하지 않거나, 기술을 필요로 하는 직업을 꿈으로 삼았거나, 또는 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면 굳이 6년을 학업에 투자하기보다 기술을 익혀 빠르게 취업하는 것이 낫다고 본다.
중·고등학교는 자신의 희망 진로에 맞춰 선택하는데 크게 대학 진학 과정(VWO·HAVO)과 직업학교(VMBO)로 나눌 수 있다. 6년 과정인 VWO의 학생 대부분은 연구 중심 대학을, 5년 과정인 HAVO의 학생은 실무 중심 대학을 목표로 공부한다. 4년 과정인 VMBO의 학생들은 졸업 후 취업 전선에 뛰어들거나 MBO에 입학해 심화 직업 교육을 받는다. VMBO 학생들이 연구 또는 실무 중심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불가능 하진 않다. 원한다면 VMBO에서 VWO까지 수료할 수 있어, 뒤늦게 다른 목표가 생긴 학생들에게도 길은 충분히 열려 있다.
교육 시스템이 이러하니, 교육과정에 따라 인기 분야도 다르다. 우리집 두 아이가 밟고 있는 VWO 과정의 학생들이 선호하는 진로는 의치대, 법대 그리고 공대 등이다.

빅데이터·융합 공학 전공 인기 상승세
고2인 큰아이도 치대를 목표로 한다. 단, 입시가 치열하지는 않다. 네덜란드는 중·고교에서 VWO 과정 졸업 시험을 통과하면 원하는 대학에 원서를 넣을 수 있고 대학에서는 입학을 허가한다. 그래서 고교 과정만 잘 이수하면 대입은 비교적 수월하게 치를 수 있다. 다만 치대는 최근 입학 지원생이 급증하는 추세라 ‘numerus fixus’에 해당한다. 일종의 입학 인원 제한 제도인데, 최근 특정 인기 학과에 학생들이 몰리면서 시행되기 시작했다. 해당 학과에서 교육받을 자질이 충분한 학생들만 합격시키는 시스템이다. 교육의 질을 유지하고, 수료 후 취업 경쟁을 최소화하는 것이 목적이다.
또 의료와 공학을 접목시킨 ‘klinische technologie’의 인기가 높아졌고, 빅데이터를 이용한 농업 분야도 주목받고 있다, 우리 가족이 사는 에인트호벤에 위치한 TU/E대학에는 데이터 사이언스라는 신설 학과가 있는데 영어로 강의가 진행돼 해외 각국에서 지원자가 올 정도로 인기가 높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네덜란드 학생은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을 선호한다는 것. 높은 연봉보다는 자기계발 가능성과 성취감, 동료와의 관계, 그리고 작업 환경을 중시하기 때문인데, 중소기업이 이런 요소를 더 잘 갖추고 있다고 여긴다. 남편의 회사 동료 중 한 명도 어느 날 갑자기 중소기업으로 이직한 다는 소식을 전했다. 대기업은 업무가 세분화돼 있어 지식을 폭넓게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급료가 적어지더라도 자기계발을 위해 중소기업으로 이직한 것. 네덜란드인의 직업관을 짐작할 수 있는 사례였다.

네덜란드 역시 직업에 대한 평판, 선호도의 차이가 있다. 하지만 학생들의 진로 결정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관심이 토대다. 이 동력은 어디서 올까? 우선 네덜란드 부모에게서 답을 찾을 수 있다. 많은 대화를 통해 자녀들을 격려하고 다양한 것들을 경험하게 해주며, 자녀 스스로 원하는 것을 선택하고 그것을 책임지도록 훈련시킨다.
다음으로는 사회적 특성을 꼽을 수 있다. 임금 격차가 적고 실직·은퇴 후의 사회보장제도가 탄탄하다는 점, 중·고교에서 진로가 대략 결정돼 희망 대학·학과 진학이 비교적 수월하다는 점, 취직했다가 학업을 재시작할 수 있고, 이직이 쉽고 전직도 잦은 등 ‘한 번의 선택에 따른 미래 불안감’이 적어, 도전적으로 진로·직업을 선택할 수 있다.
중·고교의 역할도 크다. 매년 졸업생 또는 직업인을 초청해 대학·학과 선택과 대학생활, 근무 상황에 관해 실감나게 들려준다. 진로 상담 전문 교사의 지도도 상시적으로 이뤄진다. 대학은 ‘오픈 데이’를 통해 학과를 소개하고 모의수업도 제공한다. 이 과정을 통해 청소년들은 새로운 분야에 관심을 갖거나 기존 관심 분야에 대한 식견을 넓히며, 적성에 가장 맞는 분야를 찾아 진로를 스스로 결정하는 안목을 키워간다. 사회적 제도와 인식, 학교의 시스템이 맞물려야 ‘스스로 진로를 찾는 청소년’ 이 만들어진다는 얘기다.

아인트호벤 Helicon 전경. 원예·환경·농업·축산·영양 관련 직업 교육과정을 제공하는 중·고등학교로, 3년 수료 후 MBO 과정으로 연계된다.

아인트호벤 TU/E(Technical University in Eindhoven). 1965년에 설립된 공대로, 대부분의 학과가 영어로 수업을 진행해 세계 각지에서 유학생이 온다.

두 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게시판에 붙은 포스터. 전문 직업인과의 일대일 멘토링과 전문 상담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광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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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UCATION 학부모 해외통신원 (2019년 06월 9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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