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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칼럼

898호

EDUCATION 학부모 해외통신원

한 교실, 서너 살 차이 흔한 네덜란드 고교





이달의 주제
한국인은 모르는 이 나라의 교육



네덜란드 학교에 아이들을 보낸 첫날이 떠오른다. 다른 나라의 다른 언어를 쓰는 학교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낯설지 우려됐다. 걱정은 기우였다. 학교를 마치고 교문 밖으로 나오는 아이들의 표정이 너무나 환했다.
“엄마, 네덜란드 초등학교는 천국이야!” 딸아이의 말투와 표정까지 생생하다.
어린 아이들의 눈은 때론 어른보다 더 정확하다. 딸이 발견한 네덜란드 학교의 다른 모습을 8년간 조금씩 배우고 있다.


‘노는 시간’ 보장하는 초등학생의 빈 가방
딸이 ‘천국’ 이라고 한 첫 번째 이유는 가벼운 가방이었다. 네덜란드 초등학생의 책가방은 과장을 약간 더해, 텅 비어 있다. 교과서를 집에 못 가져가게 하기 때문. 교과서를 포함, 학습 자료는 전부 사물함에 둔다. 집에서 점심을 먹고 올 수 있어 도시락조차 없이 다니는 학생도 있다.
매일 알림장을 확인하며 준비물을 챙기고, 교과서로 빽빽이 채워진 묵직한 책가방을 들고 등교하는 것에 익숙했던 나나 아이에게 가장 기쁜 일이었다. 가벼운 가방은 아이들의 자유 시간을 위해서다. 학습 시간은 학교에서 충분히 채우니 집에서는 놀라는 것.
여기에 수준별 맞춤형 학습을 제공한다. 뒤처지는 아이에게는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주고, 앞서가는 아이에게는 도전 정신을 자극해준다. 입학 초 우리 아이들은 언어교정 교사와 따로 수업을 했고, 학교에서 주는 단어장을 매주 정해진 만큼 채워나갔으며, 독해 시간에는 수준에 맞는 지문으로 공부했다. 덕분에 아이들은 별다른 좌절 없이, 학교에 안착했다. 학생들도 수준별 수업을 개인의 특성, 즉 나와 다름으로 받아들여 스트레스를 받는 일도 거의 없다.
그렇다고 마냥 노는 학교는 아니었다.
학생이 스스로 해야할 일을 관리하도록 훈련시켰다. 두 아이가 다닌 학교는 매주 월요일마다 제각각 다른 할 일 목록을 만들어 반 전체에 나눠줬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매일 한 시간 정도 시간이 주어졌고, 아이들은 스스로 언제 어떤 일을 할지 정하고 각자의 일정대로 움직이며 일주일간 할 일을 마치는 것을 반복했다.


‘유급’ 피하려 공부 바쁜 중·고생
단 중·고등학교에 진학하면 상황이 크게 달라진다. 특히 인문 계열 상급학교(김나지움) 학생은 매주 밀려드는 과제와 시험 등으로 여유가 사라지고, 하루하루 관리하며 밀도 있게 공부해야 교과를 따라갈 수 있다. 물론 네덜란드는 중·고교 진학 시 학생의 진로가 어느 정도 결정되고, 개인의 적성과 능력에 맞는 학교를 선택하므로 개인 차가 있다.
이곳 학생들은 학원처럼 사교육을 받을 곳이 없어, 집에서 스스로 공부해야 한다. 학생이 치열하게 성적을 관리하는 이유는 유급 제도 때문. 매 학년 학교가 정한 기준 점수에 못 미쳐서 다음 학년으로 진급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특히 학습량이 크게 느는 고교에서는 유급당하기 일쑤다. 초등학교에서 월반 또는 유급했던 학생도 있으니, 고1~2가 되면 같은 학년이라도 한 두 살은 기본, 많게는 서너 살까지도 나이 차가 나기도 한다.
또한 중·고교에서는 학생들에게 담당 과목 교사에 대해 익명의 피드백을 요구하는 설문 메일을 보내고 이 내용을 수업에 반영한다. 수업 도중에 교사의 말에 이의를 제기하며 의견을 제시하는 학생들의 모습도 종종 볼 수 있는데, 교사들은 그러한 학생들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준다. 예의가 전제돼 있지만, 학생과 교사가 자유롭게 소통하며 서로의 의견을 자유롭게 나누는 것이 매우 자연스럽다. 이러한 태도는 어려서부터 부모와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자신의 분명한 의견과 생각을 부모와 늘 주고 받으며 자라온 데서 기인한 것이 아닐까 싶다.


지구 반대편의 나라에서 새로운 교육 환경에 적응하며 새로이 경험하게 된 것들은 무수히 많았다. 그중 제일 인상 깊었던 점은 공부에 대한 네덜란드 사람들의 시각이었다. 개인의 여러 가지 재능 중 하나로 보는 것. 그래서 공부만을 고집하지 않고, 일찍이 각자의 소질과 능력에 맞춰 진로를 결정하며, 그에 맞는 중·고교를 선택해 진학한다. 초등학교 시절 놀 시간을 보장받는 대신, 자신을 관리하는 습관을 들인 학생들은 각자의 방향과 속도에 맞추어 자신만의 인생을 걸어갈 바탕을 갖춘다.
유급만 해도 그렇다. 유급을 피하려 열심히 공부하지만, 유급당한 당사자나 유급생과 함께 공부하는 학생들도 유급을 ‘대단한 실패’로 여기지 않는다.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 시간을 좀 더 쓰는 것이니 좋고 나쁘고를 판단할 이유가 없다는 식. 학생들은 물론 학부모나 학교, 사회적으로도 유급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이런 인식이야말로 아이들이나 부모들이 학교에서의 성과나 속도에 조급해하지 않고 각자의 속도대로 학업을 마칠 수 있는 배경이 돼주는 듯하다.
한국 사회에서 입시 위주 교육을 비판하면서도 정작 학교 교육은 크게 변화하지 못하는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1. 두 아이가 다니고 있는 아이트호벤 시내 공립학교, Van Maerlantlyceum의 전경. 개교한 지 100년이 된 유서 깊은 학교다.



2. 네덜란드 중·고등학생의 학습량은 절대 적지 않다.
한국으로 치면 고2인 딸이 학교에서 생물 시간에 배운 내용을 시험에 대비해 따로 요약 정리해놓은 노트.



3. 네덜란드는 유급 기준이 꽤 엄격하다. 학교 홈페이지의 유급 제도 안내 페이지 또는 지난해 각 학년 학생들의 진급 및 유급 현황을 정리한 표다. 오른쪽 끝의 백분율이 정상적으로 상급학년에 진급한 학생의 비율인데, 아래쪽 즉 고학년으로 갈수록 그 숫자가 적어진다.
유급 비율이 높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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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인순 (네덜란드 통신원)
  • EDUCATION 학부모 해외통신원 (2019년 03월 89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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